추억의 편린 50 산곡 초등학교
50 산곡 초등학교
1945년 해방이 되자 산곡간이학교가 정식으로 산곡국민학교로 인가가 났다.
우리들 1학년이 다음해 산곡국민학교 2학년이 되었다.
이제는 신장에 있는 동부국민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었다. 동부국민학교는 이곡에서 약 4km 이상 떨어져서 어린 학생들이 걸어서 학교에 다니기는 좀 무리였었다.
새 학교 부지는 간이학교에서 약 1km 이상 떨어진 검당산 밑에 자리를 잡았다. 공동묘지 터였라고도 하였다.
새학교로는 3학년이 되어서 이사를 갔다. 학교 운동장은 돌조각이 만아 넘어지면 무릎을 다치었다.
겨울엔 어린학생들이 산에 가서 나뭇가지를 한 가지 씩 끌고 와 난로에 불을 지폈다.
결국에는 학부형들이 나무를 한 짐씩 해다 주었다. 학부모님들 덕분네 교실에 난로를 따뜻하게 피울 수 있었다.
내가 4학년이 되었을 때 큰언니가 학교 선생님으로 부임해 왔다. 행진 할 때 발 뒷굼치를 들고 걸으라는 담임 선생님 말을 듣고 나는 행진 할 때 뒷굼치를 땅에 대지 않고 걸었다. 언니선생이 내걸음 걸이가 어색했는지 내 걸음 걸이를 고쳐주었다.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유난히 위생에 신경을 쓰셨다. 우리 반 학생들이 치아가 누렇다고 개울가로 데리고 가서 이를 소금으로 닦게 했다. 소금으로 닦아도 깨끗해지지 않으면 개울가 모래라도 닦아 이를 하얗게 해야 했다. 또 자취를 하셨는데 쌀도 한번만 씻어야 한다고 하셨다. 한국 아낙네가 이남박에 보리쌀을 박박 치대서 손톱이 닳는다고 너희들은 영양도 살리고 손톱도 예뻐지라고 가르쳤다.
또 눈이 오면 학생들을 데리고 토끼를 잡는다고 산 아래서부터 토끼몰이를 시켰다. 토끼의 습성은 아래 다리가 길어 올라가는 것은 잘하나 내려 올 때는 앞다리가 짧아 잘못 내려온다고 했다. 나는 토끼몰이에 참석은 했지만 토끼를 잡은 기억은 없다.
50산곡초등학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