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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감상

구스타브 모로의 에우로페의 납치

구스타브 모로 (Gustave Morean 1826-1898 프랑스태생)


 구스타브 모로 - 에우로페의 납치

“나는 만질 수 있는 것이나 볼 수 있는 것을 믿지 않는다. 내가 믿는 것은 오직 내가 보지 않는 것, 느끼는 것뿐이다.”
프랑스의 상징주의 화가 구스타프 모로가 남긴 말이다. 이 말 그대로 모로의 작품은 신화나 성서를 소재로 상징적이고도 탐미적인 표현세계를 구축하여, 현대인에게 동화적인 감상을 선사한다.
그의 작품 중 ‘에우로페의 납치’는 다른 많은 화가들도 탐냈던 소재지만 모로의 작품이 가장 사랑 받고 있다. 아마도 동화적인 구성에 부드러운 색채와 질감을 보여주는 덕분일 게다.
소에 올라탄 에우로페의 표정에선 납치당하는 여성의 긴장과 두려움보다 사랑에 빠진 여성 특유의 만족스러운 미소가 엿보인다. 에우로페와 더불어 힘차게 도약하는 황소의 역동적인 자세는 마치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이는 한 쌍의 무모한 커플이 떠오를 정도다.
그리스 신화의 한 장면인 이 사랑의 도피행각은 갑작스럽게 이루어진다. 페니키아 왕인 아게노르의 딸, 에우로페가 바닷가에서 친구들과 놀던 중 어디에선가 잘생긴 황소 한 마리가 나타났고, 어찌나 멋있었는지 모두 모여서 그 늠름한 모습에 감탄하고 있었다.
그런데 황소가 에우로페에게 등에 타라는 듯한 시늉을 계속하고, 호기심에 그녀가 황소의 등에 올라타자마자 갑자기 황소가 바다를 향해 돌진하는 게 아닌가. 에우로페와 친구들은 놀라서 소리를 쳤지만, 황소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넓은 바다를 건너 어느 외딴섬으로 향한다. 에우로페가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황소가 갑자기 제우스로 변해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에우로페로서는 연달아 일어난 ‘사건’에 얼이 빠질 지경이지만 그보다 먼저 제우스의 위용에 넋이 나가고 만다. 덕분에 외딴 크레타 섬에 자신을 납치한 범인이지만 제우스와의 사이에 세 아들을 두고, 마음씨 좋은 크레타 왕과 결혼해 후일 왕비가 되었다.

1892년 파리의 예술학교의 미술과 교수로 초빙되어 마티스, 루오, 마르케 등의 화가들을 길러낸다. 특히 모로는 자상함과 형식에 구애되지 않는 교수 방법 때문에 학생들 사이에서 존경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1898년 파리에서 암으로 사망했다. 사망후 유언에 따라 모로가 살던 파리의 9구 로슈푸코 거리 (프랑스어: rue de la Rochefoucauld) 14번지의 집은 현재 모로 박물관 (프랑스어: Musée Moreau)으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