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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가 일본의 사랴쿠? 신윤복이란가

김홍도가 일본의 사랴쿠? 신윤복이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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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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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가 일본의 사랴쿠? 신윤복이란가



조선 후기 진경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김홍도. 정조의 총애를 받았던 그는 훤칠한 키에 하얀 얼굴의 미남형으로 시서화에 능하고 악기 연주를 잘하는 풍류남이었습니다.
 
'서당도', '씨름도'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풍속화 뿐 아니라 산수화, 인물화, 불화 등에 모두 능했던 그가 최근 일본 최고의 우키요에 화가 토슈사이 샤라쿠와 함께 거론되고 있습니다.
김홍도가 샤라쿠였다는 얘기인데, 과연 사실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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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에도시대 극장가는 주연 배우들의 얼굴을 그린 일종의 브로마이드인 '야쿠샤에'가 단연 인기 품목이었다고 합니다. 그 중 1794년 5월, 에도 극장가에 혜성처럼 등장한 일본 목판화인 우키요에 화가 샤라쿠는 충격적이고 개성있는 야쿠샤에를 발표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배우의 모습보다 우스꽝스럽고 엽기적인 야쿠샤에를 그렸던 샤라쿠는 무려 140여점이 넘는 왕성한 작품 활동을 벌이다 10개월여 만에 홀연히 자취를 감춰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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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라쿠가 김홍도였을 가능성은 꽤 여러 가지입니다. 샤라쿠의 그림에 나타난 선이 김홍도의 필선과 아주 유사하며 김홍도의 행적이 묘연했던 시기가 바로 샤라쿠가 일본에 등단한 1794년경이고, 또 샤라쿠의 그림에는 분명 일본인이 만들어낼 수 없는 화풍이 접목되는데 이것은 김홍도 정도의 화가만이 이룰 수 있는 독특한 세계란 것입니다.
 
이를 구체화시킨 한 학자는 1794년 김홍도가 정조의 밀명을 받고 일본으로 건너가 지금의 간첩활동과 비교되는 지도 제작이나 정탐활동을 했으며 그 와중에 화가로서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토슈사이 샤라쿠'라는 이름으로 일본의 우키요에를 그렸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조선일보에 토요일마다 연재된 "노래하는역사" 라는 칼럼이 있었다. 일본 사기와 만요집을 풀이한 컬럼이었는데 필자(이영희)는 일본사기와 만요집은 우리의 한글식 한자인 "이두"를 가지고 번역 해야지만 뜻이 풀린다는것이다.
지금도 일본식 한자로는 그 의미를 알수없는 글들이 너무나도 넘쳐 난다는것이 필자의 주장이었다. 물론 일본이나 한국의 역사학계에서는 인정하지 않치만 굉장히 재미있는 내용으로 칼럼은 구성되어있다.
그중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조선시대 화가 김홍도와 일본의 대표적인 "우키요에" 화가 샤라쿠가 동일 인물이라고 주장하는 글이었다. 김홍도는18세기 후반에 활동한 조선의 대표적인 궁중화가로 일반적으로 풍속화를 잘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모든 장르에 걸쳐 탁월한 기량을 발휘한 천재 화가다.
김홍도가 활동하던 시기, 일본에서는 토슈사이 샤라쿠 키타가와 우타마로 카츠시카 호쿠사이등 풍속화(우키요에)를 그리는 화가들이 이름을 날렸다. 그 중에서도 샤라쿠는 1794년 5월 어느 날 에도에 홀연히 나타나 10개월간 140여점의 그림만 남기고 사라졌다.
샤라쿠(寫樂)의 우키요에는 마네, 모네, 드가 등 전기인상파를 비롯해서 고흐의 후기인상파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회화에 크게 영향을 끼친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적 화가다. (일례로 고흐가 파리에서 그린 '탕귀영감의 초상화'의 배경이 우키요에로 꽉 채워져 있다. 그 정도로 일본의 우키요에는 당시 유럽 화가들을 매료시켰다) – 이 부분은 네이버 지시검색 참조

필자(이영희)는 여기에서 김홍도와 샤라쿠가 동일인물이 아닌가 하는 추리를 한다. 필자의 근거는 이러하다 김홍도가 조선통신사의 일원으로 일본을 방문한 경험이 있으며, 1794년쯤 김홍도가 현감인가, 군수가 하는 벼슬을 한적이 있는데, 갑자기 사라졌다 10개월 후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필자(이영희)는 김홍도가 임금(정조)의 밀명을 받아 일본의 군사정보 등을 수집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1764년 이후 30년간 통신사의 왕래가 없었고 임진∙정유 왜란을 겪은 조선으로서는 일본의 정황을 파악할 수 있는 정보가 필요했다),
거기에서 활동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풍속화를 그려 팔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김홍도는1789년(44세)에 정조의 명에 따라 츠시마 지도를 그려오기도 했던 적도 있다. – 이 부분은 네이버 지시검색 참조

그림의 스타일이나 여러모로 비슷하다는 것이 한국, 일본 역사학자 및 미술가들의 공동적인 의견이긴 하지만 증명된 것은 없는 것 같다. 필자(이영희)가 이야기하는 증거로는 샤라쿠의 그림 중에는 일본어로 해석된 한시가 있는데, 이것을 이두 식으로 해석해야 뜻이 통하는 경우가 있고, 또 글 속에 자신의 호인 '단원'을 가르키는 의미가 숨겨져 있다 점.

김홍도의 그림 중에는 발가락 6개의 부처가 많은데, 샤라쿠의 부처 그림에도 발가락 6개의 부처가 있다는 점.샤라쿠와 김홍도의 필선의 특징으로 붓 끝이 꺾여 올라간다는 점 등등 이다.

무엇이 사실인지 알 수 없지만 아주 흥미로운 칼럼으로 기억된다.
당시 일왕은 도쿠가와 막부에 의해 무기력한 존재가 되고 무사들이 사회를 쥐락 펴락했다. 가뭄과 기근으로 농민 반란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등 일본 사회는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이에 일본은 통신사를 중단하는 등의 쇄국정책을 편다.
 
반면, 조선은 안정되어 있었다. 임진왜란의 치욕을 씻고자 일본을 정복하려는 정조의 꿈도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정조는 어떤 외침도 막아낼 수 있는 화성 행궁을 건설하는 한편 화공들을 간자로 키워 일본에 보낸다. 일본 각지의 지도와 정보가 많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김홍도, 신윤복을 간자로 키워 일본에 보내
 
김홍도는 그림과 여자, 술에만 환장했던 철없는 사내 가권을 간자로 키워 일본에 보낸다. 그의 임무는 일본 무사들에게 빼앗긴 일왕의 밀서를 찾는 것.
 
<색, 샤라쿠>의 많은 부분은 가권, 즉 신윤복이 조선의 간자로 일본에 스며들어 불꽃같은 예술 활동과 냉혹하고 철두철미한 첩자 활동을 하는 에도가 배경이다.
 
당시 에도는 도쿠가와 막부의 중심가로 인구 100만이 넘는 향락과 사치의 도시였다. 저자는 가권과 함께 에도의 거리를 걷는 듯 에도의 화려한 밤거리와 그 속의 사람들 이야기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 생생한 현장감이라니, 책을 읽는 내내 자지러질 듯 교태어린 게이샤의 웃음과 샤라쿠의 그림을 사려고 몰려든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고 할까? 
정조 시대를 배경으로 한 가상 역사 추리소설인 <색, 샤라쿠>의 또 다른 즐거움은, 여러 장르의 장점과 재미를 찰지게 반죽하여 적당하게 발효시킨 듯 흥미롭고 스릴있게 펼쳐지는 퓨전 팩션이라는 점이다.
첩자와 닌자들의 냉혹하고 살벌한 세계, 화가들의 예술세계, 에도 시대의 독특한 풍속과 풍물, 무사들의 냉혹함, 사회 혼란을 틈타 끊임없이 일어나는 섬뜩한 연쇄살인 사건 등이 긴박감 있게 그려진다. 특수한 기녀인 '오이란'의 세계도 색다른 즐거움이었다.


김홍도가 일본에 건너가 사랴쿠에 가명으로 활동 했을 까?
김홍도가 신윤복을 간첩 교육을 시켜 일본에 간첩으로 황동 했을까
끊이없이  번민이 계속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