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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것들/시사칼럼

나무가지가 돈 나무못 이쑤시게

 
'부러진 나뭇가지' 보고 '돈 되겠다' 발명한게…
 
①창안 나무못 생산 기계로 대량생산 ②성공 하버드 학생들 동원해 마케팅 ③쇠락 중국에 밀려 남은 공장 없어

‘이쑤시개를 보면 미국 제조업이 보인다.’

발명·디자인 전문가인 헨리 페트로스키(Petroski) 듀크대 교수는 웹진 ‘아메리칸’ 11·12월호에서 “이 단순한 목제품이야말로 기업가의 창안·마케팅·경쟁·성패에 이르기까지 미 제조업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전형”이라며 그 파란만장한 역사를 소개했다.

이쑤시개의 원조는 부러진 나뭇가지였다. 중세 시대에는 포르투갈 장인들이 오렌지나무를 쪼개서 만든 것이 ‘세계 최고’로 군림했다. 19세기 중반 브라질에 상륙한 이 수제품을 미국 상인 찰스 포스터(Forster)가 눈여겨봤다. ‘기계로 대량생산하면 돈이 되겠다’고 생각한 그는 보스턴으로 돌아와 기술자를 찾았다. 그리고 신발을 만드는 데 쓰는 나무못 생산 기계를 응용해 양끝이 뾰족한 이쑤시개를 양산하는 데 성공했다.

문제는 판로. 포스터는 바람잡이를 시켜 상점에 이쑤시개를 대량 주문하는 한편, 하버드대 학생들을 시켜 학교 근처 식당에서 큰 소리로 이쑤시개를 찾게 했다. 식당들은 너도나도 물건을 갖다 놓기 시작했고 이쑤시개를 문 채 식당을 나서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

이 왜소한 물건은 변신을 거듭했다. 처음엔 베니어를 깎아 납작했던 몸체는 압축 공법을 통해 원통형으로 거듭났다. 특허 경쟁이 이어졌고 시장도 갈수록 커져 미국 내 연생산은 1910년 250억 개에 달했다.

하지만 1990년대 중국과 동남아가 ‘세계의 공장’으로 떠오르면서 미 업체들은 기울기 시작했다. 한때 ‘이쑤시개의 세계 수도’라 자부했던 메인주의 스트롱(Strong)시에는 남은 공장이 없다. 이쑤시개 대신 치실을 권장한 의사나 이 쑤시기를 교양 없는 행동이라고 가르친 에티켓 강사들도 관련업계에 시련을 더했다.

중국은 수출용 ‘일본식 이쑤시개’도 만든다. 이 개량품은 한쪽만 뾰족하고 다른 쪽은 기둥 장식처럼 끝이 뭉툭하고 그 밑에 홈이 파져 있다.〈사진〉 장식 처리된 끝은 나름의 기능이 있다. 쓰고 난 후 홈 부분을 따라 잘라내면 새 것과 구분이 된다. 부러진 부분은 이쑤시개의 뾰족한 끝이 식탁에 닿지 않게 하는 받침대도 된다.

이 밖에도 치아 틈에 더 잘 맞는 제품, 목구멍으로 삼켰을 때를 대비해 분해 재질로 만든 제품 등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속출했다. 하지만 추가 비용이 지나칠 땐 가차없이 사장된다. 이렇게 힘들게 살아남은 것이 오늘날 식탁 위의 표준형 이쑤시개다. 예사로 볼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