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liam Bouguereau
나이를 속여서까지 미술학교에 일찍 입학하여 앵그르에게 배우고, 연이은 수상을 합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뜨리에에서,
하루 16시간, 일주일에 7일을 꼬박 그림만을 그리며 한평생을 그림만 그린 화가입니다.
그리고, 다시 자신이 배운 방식대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또한, 당시 최고의 미술가라 불린 화가입니다.
그렇게 평생을 바쳐 80년 동안 822점(현재 알려진) 이상의 작품을 만들어낸분입니다.
William Bouguereau
기본과 안정적인 구도를 강조하는 전통적인 회화의 방식을 고수하며,
원근법과 해부학적인,사실적인 묘사
덕분에 회화에 있어서 누적된 지식과 기술, 훈련으로 인해
표현력에 있어서는 최고의 수준에 오를 수 있었던 William Bouguereau입니다.
금방이라도 튀어나올듯한 근육, 핏줄, 뼈대.. 생생한 색깔..
그런 작가가 존재했었고,
어둠속에 잊혀졌던 수십년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중의 최고라고 평가받는 부궤로.
시대적인 배경에 인상파화가들의 등장입니다.
양자에 대립과 반목이 시작되고,
심지어 인상파 그림들은 사회적인 조롱거리가 되어
살롱에서조차 전시를 거부하는 사건이 생기고,
그들은 그들만의 전시를 시작합니다.
결국, 당시의 주류였던 아카데미즘과의 대립에서 인상파의 승리.
그 와중에 인상파사조의 전통파의 화가가 직격탄을 맞게됩니다
William Bouguereau 와 19세기의 화가들
부궤로의 경우 Academism 화가의 대표자로
인식되어 집중적인 비난의 주인공이 됩니다.
(아직까지 프랑스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고,
작품들도 주로 미국쪽에 있습니다)
더구나 인상파를 이은 모더니즘의 등장과 함께,
완성도 높은 기교, 이야기를 담고 있는 구성, 감성적인데다 고전적인 방식, 소재.
모더니즘과 대치되는 모든 것을 갖고 있는 대표자로서 인식되어 William Bouguereau는
서양미술사에서 깨끗이 지워집니다.
한때 대중과 소수의 평론가들에게 사랑 받았지만,
얼마 지나지도 않아 형편없는 그림이라 평가되어,
미술관에서조차 퇴출되어 창고에 쌓여있던 그림들.
이제는 몇 점이나 그렸으며, 지금은 어디에 보관되어있는지 출처조차 찾기 힘든 그림들.
Fred Ross 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1977년에 Clark Museum에서 르누아르의 그림을 보러 갔다가,
한 구석에서 처음으로 William Bouguereau의 작품을 보았다고 합니다.
한번도 들어본 적도, 본적도 없는 그림.
의문을 품습니다.
생전에 엄청난 경력을 가진 화가가 어떻게 철저하게 묻혀질 수 있는지,
이 일이 '부궤로' 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지요.
인상파와 그 뒤를 이은 현대미술,
그리고 대량생산을 선호하는 딜러들의 이해관계에 맞물려 희생된 사람들.
'부궤로'에 대한 말도 안되는 편견과 인신공격, 악의적 왜곡이
수 십년간 지배했음을 말합니다.
한 시대의 그림에 대해 일방적으로 평가하고,
집단적으로 매도한 것이라고.
William Bouguereau의 작품은 미술사에서도 정점에 남을만한 명작입니다.
미의 기준이 시대에 따라 변하는 건 자연스럽지만,
가장 순수해야 할 미술이 미술인에게 공격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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