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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삶/어린 시절

부산 피난시절 나는 부산진초등학교 1회 졸업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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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사대부중 2학년
맨 뒷줄 가운데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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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사대부중 2학년

생활고에 허덕이고

부산 피난시절 어머니의 고심은 끝이 없었다

매일 9식구가 먹어야 하는 데 돈이 없고 양식도  없었다
처음엔 가지고 간 옷가지를 팔아 쌀을 사 밥을 해먹고 돈이 부족 할 때는 보리쌀을 사 보리 밥을 해 먹었다  점점 팔 것이 없어지니 죽을 쑤어 먹었는데 어른이나 어린애들도 똑 같이 한대접씩 죽을 먹었다

범일동 농가 근처에 6.25 전쟁 포로 숙소가 있었는데
포로들이 가끔 똥통을 메고 줄을 서 지나간다
근처 빈 밭에 구덩이를 파고 그 것을 쏟아 부으러 가는 것이다

그 때 초체한 모습의 포로들이 비누를 들고 나오면  잽싸게 떡과 바꾸는 것이 사업?이 었는데 우리 식구들은 아무도 그 것을 할 줄 몰랐다
보다 못 한 어머나가 나 보고 너는 할 수 있을 터니 해보라고 떡을 싸주셨느데 겁쟁인 나는 무서워 한발자욱도 뗄 수 없었다  떡과 비누를 바꿔 가지고 빨리 도망을 가야 하는데 포로 한테 떡을 빼앗기기도 하고   MP(헌병) 한테 잡히면 비누를 빼았길 수도 있다

큰언니가 교회 유치원 교사가 되었다

어머니는 여전히 작은 오빠를 찾아 부산 병원을 다 뒤지고 다니셨다
 죽은 시체도 오빠인가 하고 덮개를 열어보셨다 한다
이젠 대구 병원으로 가셔야 한다고 하시며 오빠 찾기를 포기 하지 않으셨다
부상병들은 계속 병원으로 후송 되곤하여 어머니는 매일 바쁘셨다
오빠는 행방불명 상태인데도 어머니는 병상을 뒤지고 다니셨다

그 덕에 어머니는 병원에 일 자리를 얻으셔서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다음 계속...)

                    행복한 하루 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