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부중1학년
사대부중2학년때 부산에서
부산 피난시절 어머니는 범일동 농가에 방을 하나 얻으셨다
안채 뒷쪽 작은 방인데 작은 다락이 있고 방문을 열면 오양간이 있었다
아홉 식구만 앉아도 방이 좁게 느껴지는 작은 방이다
오양간에는 누런 중송아지가 매여 있었다
방안까지도 송아지 우는 소리가 들리고 두엄 냄새가 났다
어머니는 둘째오빠가 혹시라도 부상해서 후송 되여 병원에 입원 해 있나 하고 병원마다 찾아 다니셨다
그러나 부상병 중에 오빠는 없었다
어머니는 부산진 초등학교에 나를 데리고 가셨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해에 6.25 전쟁이 터졌고 전쟁 직후 학교에서는 제대로 수업을 못하였다
그 때 교장 선생님이 졸업이 두달 밖에 안 남았는데 곤란하다고 말씀 하신 기억이 난다
"중학교에 갈려면 초등학교 졸업장이 있어야 하니 학교에 다니게 해주십시오"
어머니는 교장선생님께 간곡히 부탁 하셨다
"금년부터 국가고시 성적순대로 중학교 입학이 됩니더
수업 일수도 적고 학업을 따라 갈런지..."
교장 선생님은 내가 학교 성적이 부진 할까 걱정을 하셨다
그 해에 처음으로 중학교 가는 국가 고시를 치렀다
교장 선냉님께서 국가고시 발표가 난 후 조회 때 말씀하시기를
"이번 국가 고시에 피난 온 학생이 우수한 성적을 받았습니더"라고 하셨다
우리반에는 피난 온 학생이 8명 있어는데 누굴 까 궁금 했다
나는 부산진초등학교를 두달만에 졸업을 했다
부산진 초등학교에서 국가고시 시험에 삼백점 이상 우수한 성적을 낸 사람이 나란 것을 뒤애 알았다
사대부중에 다니는 고종사촌 오빠가 우리 학교 사대부중으로 오라고 했다
사대부중은 특차고 경기 이화는 일차고...
나는 사대 부중에 입학원서를 우선 냈다
그 때 사대부중은 보수동 산꼬대기에 천막으로 가교사를 짖고 피난살이를 했다
합격 발표날 학교에 갔는데 내 이름이 없었다
나는 교감 선생님을 찾아가 제 이름이 없다고 말씀드리니
"국가고시 몇점이야?"
물으셨다
내가 삼백몇점이라고 대답하니 교감 선생님이 천막 모서리에 있는 내이름을 가르켜 주셨다
나는 성적 순위 18등으로 사대부중 특차에 합격 한 것이다
이야기는 계속
좋은 하루 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