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도 (중국 화가•회화이론가) [石濤)
1641 중국 광시 성[廣西省] 구이린[桂林]~1720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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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도 자화상
중국의 화가•회화이론가.
법명(法名)은 도제(道濟). 팔대산인(八大山人)과 함께 청(淸) 초기의 가장 유명한 개성주의 화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석도는 팔대산인과 마찬가지로 한족(漢族) 출신으로 승려가
석도(石濤, 1642-1707?)는 명나라 종실 출신으로 원래 이름은 주약극(朱若極)이라고 한다.
계림왕부(桂林王府)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부터 선종 사찰에 맡겨져서 승려로 자랐다. 타의로 불가에 입문하였으나 불교사상 외에도 노장사상 등에 관심이 많았고 유∙불∙도의 사상과 서화를 두루 익힌다. 성인이 된 후에는 선성(宣城), 남경(南京), 북경(北京) 등으로 옮겨 다니며 살았다. 명나라 유민화가였으나 남경에 머무르던 중인 1684년과 1688년에는 강희제(康熙帝)를 배알하고 자신이 그린 <북경명승화책(北京名勝畵冊)>과 <해안하청도(海晏河淸圖)>를 진상하기도 하였다. 북경에 머무르며 청의 관리, 문인화가 등과 교류를 쌓기도 했으나 1692년에는 양주(揚州)에 정착하고 그곳에서 말년을 보내며 그림을 그리는 한 편으로 자신의 회화사상을 정리한 총 18장으로 구성된『화어록(畵語錄)』을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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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석도는 문인화 전통에서 첫 손 꼽는 창작품을 남김과 동시에 최고의 이론을 세운 점으로 평가받는다. 석도 회화론의 뼈대는 '일획론'이다. 그가 말하는 '일획'은 "하나에 만법(萬法)이 깃들이고 만법은 하나로 귀결된다"다. '일획'은 "내 마음과 사물 사이에 거리낌이 없다"는 '나의 법'이라 할 수 있다.
"붓이 마르면 아름답고 붓에 물기가 많으면 속되다" 했던 석도는 66세로 눈을 감을 때까지 마른 붓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무엇이 '나의 법'인가 끊임없이 물었던 그가 후학에게 남긴 한마디는 평범하면서도 가슴에 사무친다. "상투성에서는 심안(心眼)이 죽는다. 옛것을 모범으로 삼는 것이 필요하지만 절대로 옛것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옛것을 배워 그것을 변화시켜야 한다. 어떤 법도 세우지 마라."
석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