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표속의 불상
금동 계미명 삼존불
높이 17.5센티미터, 7세기, 국보 72호, 간송미술관 소장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국보78호)
높이 83.2센티미터, 6∼7세기.
석가 열반 후 56억 7천만년 뒤에 온다는 부처가 미륵이다.
아직은 보살인 미륵이 도솔천에서 먼 미래에 어떻게 중생을 구제할 것인가를 다리를 꼬고 앉아서 깊은 사유에 빠져있다.
태자사유상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의 모티브가 된 싯달타 태자 사유상. 3세기 후반. 인도
미국 어느 박물관 홈페이지에 소개된 한국 미술실의 초기 화면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국보83호)
높이 93.5센티미터, 7세기.
삼국시대 불상 조각 중의 백미로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는 반가사유상.
이 포즈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형태를 의도적으로 왜곡해야 할 정도로 많은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이나,
이 불상은 이를 모두 극복하여 완벽한 비례와 안정감, 그리고 조형적 아름다움을 갖춘 걸작이다.
목조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일본)
일본 국보 1호인 이 작품은 우리의 국보 83호 미륵보살 반가사유상과의 유사성,
일본에서 생산되지 않는 적송이라는 소나무로 만들어졌다하여 백제에서 전해 준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얼굴부분 확대
이 거룩한 모습을 보고 있던 어떤 일본 학생이 갑자기 뛰어들어 불상을 껴안는 바람에 손가락이 부러진 적이 있었다고 한다.
경주 구황동 금제아미타여래좌상
높이 12.1센티미터, 700년경, 국립중앙박물관.
이 불상은 불신과 좌대가 분리되는 특이한 형태이며 각선 또한 매우 예리하고 삼국기 불상양식이 아직 농후하게 남아있다.
서방 극락 세계를 주재하는 아미타여래를 모심으로써 당시 사람들은 극락왕생을 빌었다.
석굴암 본존불
국보 24호. 한국 불교예술을 대표하는 최고의 걸작품.
석가모니가 진리를 깨치는 순간을 표현하였다.
수많은 돌들을 짜맞추어 만든 인공석굴로 건축학적으로도 매우 절묘한 작품이다.
얼굴부분 (확대)
범접할 수 없는 엄숙함과 진리를 깨치는 자의 희열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저절로 머리를 숙이게 한다.
보리사 석불
석굴암 본존불과 가장 형태가 유사한 불상이다. 하지만 조금 더 인간적인 느낌을 준다
수리 전의 석굴암
전실 앞쪽 등이 허물어진 상태이다. (1913년 이전
석굴암 금강역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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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83.2센티미터, 6∼7세기.
석가 열반 후 56억 7천만년 뒤에 온다는 부처가 미륵이다.
아직은 보살인 미륵이 도솔천에서 먼 미래에 어떻게 중생을 구제할 것인가를 다리를 꼬고 앉아서 깊은 사유에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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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의 모티브가 된 싯달타 태자 사유상. 3세기 후반.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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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93.5센티미터, 7세기.
삼국시대 불상 조각 중의 백미로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는 반가사유상.
이 포즈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형태를 의도적으로 왜곡해야 할 정도로 많은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이나,
이 불상은 이를 모두 극복하여 완벽한 비례와 안정감, 그리고 조형적 아름다움을 갖춘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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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보 1호인 이 작품은 우리의 국보 83호 미륵보살 반가사유상과의 유사성,
일본에서 생산되지 않는 적송이라는 소나무로 만들어졌다하여 백제에서 전해 준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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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거룩한 모습을 보고 있던 어떤 일본 학생이 갑자기 뛰어들어 불상을 껴안는 바람에 손가락이 부러진 적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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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12.1센티미터, 700년경, 국립중앙박물관.
이 불상은 불신과 좌대가 분리되는 특이한 형태이며 각선 또한 매우 예리하고 삼국기 불상양식이 아직 농후하게 남아있다.
서방 극락 세계를 주재하는 아미타여래를 모심으로써 당시 사람들은 극락왕생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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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24호. 한국 불교예술을 대표하는 최고의 걸작품.
석가모니가 진리를 깨치는 순간을 표현하였다.
수많은 돌들을 짜맞추어 만든 인공석굴로 건축학적으로도 매우 절묘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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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접할 수 없는 엄숙함과 진리를 깨치는 자의 희열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저절로 머리를 숙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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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본존불과 가장 형태가 유사한 불상이다. 하지만 조금 더 인간적인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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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실 앞쪽 등이 허물어진 상태이다. (1913년 이전
석굴암 금강역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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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2구가 배치되는데 2구 모두 한쪽 팔을 들어 주먹을 쥐었고 다른 손은 내리고 있는데
석굴의 조각상 중에서도 가장 튀어나게 조각되어 위력을 지닌 역사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금강역사의 모습
석굴을 지키고 있는 금강역사의 강인한 모습. 팔의 근육을 생생하게 표현해내고 있다.
왼쪽의 역사는 입을 벌리고 있고, 오른쪽 역사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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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용문석굴 외벽 금강역사상 (505- 523 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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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조탑동 5층 벽돌탑에 1층 문의 좌우에 새겨진 상으로 매우 익살스럽게 표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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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아이같이 짧달막한 체구이지만, 역동적이고
힘찬 자세와 얼굴, 가슴, 팔, 다리 등의 입체감은 거친 돌의 표면 질감과 어울려
금강역사의 위력을 잘 드러내고 있다. 통일신라. 9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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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관촉사 은진미륵불
논산 관촉사의 이 미륵입상은 은진면에 있다하여 속칭 은진미륵이라고 일컫는다.
국내 최대의 석조 불상으로서 전체의 조형이 돌기둥모양에 가까워 입체감은 거의 없다.
기술이 기백을 따르지 못한 불상이다.
국내 최대의 석조 불상으로서 전체의 조형이 돌기둥모양에 가까워 입체감은 거의 없다.
기술이 기백을 따르지 못한 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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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미륵불(사진)
이 불상은 전체 높이가 18미터이나 인체비례도 무시되어 모자와 머리를 합치면 거의 9미터..
2등신에 가깝다. 개성이 강하다고 해야할까.
이 불상은 전체 높이가 18미터이나 인체비례도 무시되어 모자와 머리를 합치면 거의 9미터..
2등신에 가깝다. 개성이 강하다고 해야할까.
그림 속 은진 미륵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이 1880년 그림으로 표현한 은진미륵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