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사랑한 푸른 눈의 화가 '기덕'
엘리지베스 키스(1897~1956)
동대문
위 그림은 1920년, 해 뜰 무렵의 동대문(흥인지문)입니다. 사방에 눈이 쌓여 있고 하늘에는 붉은 기운이 감돌고 있습니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화가 엘리지베스 키스(1897~1956)의 목판화입니다. 집들도 산들도 거리도 정겹습니다.
화가 키스는 평생 미혼으로 살면서 동양의 색을 감각적으로 그려냈습니다. 특히 한국에 매료되었고 한국을 무척이나 사랑했습니다.
"이 땅의 신비스러운 아름다움이란… 별조차 새롭게 보인다. 그림 그릴 곳을 찾아다니다가 나는 가끔 멈춰 서서 이 땅의 고요함, 평화를 만끽하곤 한다."
그녀의 감탄처럼 그림 속의 이 땅은 고요하고 평화로웠습니다.
화가 키스와 함께 여행했던 그녀의 동생 로버트슨 스콧은 또 이렇게 한국인을 예찬했습니다.
"한국인들은 모두 다 순수하고 담백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학문을 존중하고 무력을 싫어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한국인들의 자질 중에서 제일 뛰어난 것은 의젓한 몸가짐이다."
그러고 보니 그림 속의 동대문도 정말 의젓합니다. 당시 동대문 풍경은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불과 87년 전인데 지금은 너무 많이 변해 버렸습니다. 고층 빌딩에 주눅 들고 질주하는 차량에 갇힌 동대문은 동 틀녘 저 붉은 기운을 맨 먼저 맞이하지 못합니다. 높은 빌딩이 하늘을 찌르는 시대에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일까요?
과부
"온화하면서도 슬픈 얼굴을 한 이 여인은 북부 지방 출신이다. 그녀는 일제에 끌려가 온갖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서 풀려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몸에는 아직 고문당한 흔적이 남아 있었고, 외아들 역시 3•1운동에 적극 가담해서 일본 경찰에 끌려가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른다.
<신부>에 그려진 장신구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머리 위에 족두리보다 화려한 화관을 썼고, 화관에는 움직일 때마다 떨림이 있어 '떠는 잠'이라고 불리는 보요들이 가지런히 꽂혀있습니다. 화관은 원래 왕가나 양반가에서 혼례를 올릴 때 사용되다가, 정조 12년부터 서민들의 혼례 때도 사용할 수 있게 허용되면서 보편화하였습니다.
쪽진 머리에는 용잠으로 보이는 커다란 비녀를 찔러넣었고, 그 옆에 손으로 만든 꽃, 그리고 쪽 뒤에는 도투락 댕기가 길게 늘어져 있으니, 우리나라 전통 신부 옷과 장신구를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새색씨는 당시 해주결핵요양원에서 의료선교사로 활동하던 셔우드 홀 박사의 요리사 딸 결혼 때 사진이랍니다
엘리자베스키즈는 한국의 별빛도 사랑 했습니다.
금강산 구룡폭포
결혼식행렬
날마다 좋은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