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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삶

추억의 편린 베틀에 앉으신 어머니

55 베틀에 앉으신 어머니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어머니가 할머니 수의를 위한 베짜기의 조언을 해주었다. 아니 도와 주었다.

우선 고치에서 실을 뽑는 과정을 동리에서 잘하시는 분을 모셔왔다.

 누에고치를 뜨거운 물에 넣고 삶으면서 누에고치의 잔털을 고르고 젓가락으로 약 15가닥을 잡아 실을 뽑는다. 실을 뽑을 때 동네 어린이들이 번데기를 먹으러 우리 집으로 모여들었다. 마치 동네 잔치 날 같았다. 실 켜를 해 타래실을 만들고 날실에 베메기로 풀을 먹인다. 풀을 먹일 때에는 화로에 불을 담아 도투마리에 감아서 베틀에 올려 날실이 빳빳하도록 풀을 먹이면서 실을 말렸다. 풀은 우뭇가사리에 밀가루를 넣고 쑨 가사리 풀을 사용하였다. 씨 날에 풀을 먹이고 말려서 날실 끝을 말코에 매었다. 온 동네 사람들이 어머니의 선생님이 되었다.

 드디어 베들에 명주의 날실의 길이가 20m 쯤 ,폭이 약 40cm쯤 앉혀 졌다.

 나머지는 어머니의 몫.

어머니는 평생 처음으로 베틀에 앉았다. 명주를 짜는 것은 어머니의 몫이다. 할머니의 분부를 어머니는 이행 하 실려고 명주를 짜기 시작하셨다. 어머니가 베틀에 앉을깨에 앉아 부티를 허리에 걸고 베틀신을 신었다.  발을 앞뒤로 밀고 당기며 날실을 개구시켜 벌리고 북 속의 씨실꾸리에서 씨실을 넣고 바디로 힘이 고루 가도록 치면 명주가 짜이게 된다. 어머니는 힘에 겨워 하셨다. 어머니의 명주 짜기 솜씨는 엉망이었다. 바디로 날실을 힘 것 치셔도 한 쪽이 넓고 한쪽이 좁았다. 어머니는 계속 왼 쪽이 넓었다 오른 쪽이 넓었다 균형을 잡지 못했다. 그래도 어머니는 포기 하지 않고 명주를 다 짜셨다.날실은 그대로인데 씨실이 문제가 되었다. 어떤 곳은 손가락이 들어갈 정도로 균형이 맞지 않았다. 

 할머니는 시집살이시키기로 소문 난신분인데 어머니의 명주 짜기에는 아무 말씀이 없으시고 수의를 지어 노라 하셨다.

 할머니는 서울 며느리의 솜씨로 수의를 만들어 입고 저 세상으로 가시기를 소원하셨다

 아버지가 심어 놓은 옷나무를 켜서 관을 만들 준비도 하여두었다.

 

명주의 폭은 약 ~40cm, 길이는 약 20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