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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삶/어린 시절

추억의 편린 부모님은 중매로 결혼하셨다

 

추억늬 편린 

2. 나의 부모님은 중매로 결혼하셨다.

 

부모님의 결혼은 오촌 당숙 유 원준 (兪元濬)씨의 중매로 이루어졌다고 했다.

큰외삼촌 김유근은 서울의 부잣집 자제들과 특별한 교우관계를 맺고 계셨다

그 중 광주군 중부면에 사는 유 원준과 의형제를 맺어 일본 유학까지 보내 주어 다녔다고 한다.

큰외삼촌은 여동생들 때문에 고민을 하고 있었다.

큰 외숙은 누이들이 많아 고민이 많았던 것이다.

큰 외숙 아래로 여동생이 여섯 명이 있었는데 셋째까지는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결혼을 시키셨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넷째 누이부터는 큰 외숙이 주관하여 혼인을 시키게 되였다

오승지 댁으로 시집을 간 넷째 누이는 처음에는 시어머니가 새 며느리에게 잘하더니 점점 친정집 재산을 떼 오라고 은근히 시집살이를 시키었다.

 

오승지댁은 한집안에서 승지가 다섯 명이나 났다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다. 처음에는 오승지댁에서 다섯째누이인 내 어머니를 탐했는데 역혼은 안된다는 신부측 관례에 따라 넷째누이가 시집을 갔다. 혼수도 많이 장만하여 두루마리를 한 나절이나 읽었다고 전해졌다.

그런데 시어머니 되시는 분은 친정에서 200석 재산을 가지고 왔으니 새 며느리는 300석을 가지고 오라고하며 시집살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창고의 열쇠를 며느리에게 맡기고 종을 시켜 열쇠를 감추어 아침밥을 못 짓게 만들기도 하여 새 색시가 아랫것을 시켜 급히 친정으로 쌀을 얻어 가게 만든다든가, 또 여자의 월경대를 빨아 대낮에 빨래 줄에 널어 망신을 시켰다고 한다. 더구나 새신랑은 과거를 보기 위한 공부 핑계로 외가에 보내어 신부를 독수공방을 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새색시는 결국 시름시름 몸져눕게 되어 친정으로 요양을 보냈다고 했다.

 친정으로 돌아온 넷째는 몸이 퉁퉁 부어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는 어린아이처럼 되어 매사에 투정을 부리었다. 예를 들면 여러 가지 젓갈을 종지에 담아 12가지를 채워 상을 보라고 억지를 부렸고, 상을 차려주어도 입에도 대지 않고 잔소리만 해 댔다고 한다.

큰 외숙은 그런 누이가 불쌍하다고 손수 업고 집안을 서성이며 눈물을 지었다 한다. 넷째누이는 친정에 요양 차 온지 두 달만에 세상을 떴다. 오승지댁 새신랑은 아내가 죽었어도 처가에 오지 아니했다.

 오승지댁에서 처음에 다섯째 누이인 흥선을 달라했는데 역혼은 안한다고 넷째를 오승지댁으로 시집보냈던 것인데 죽었다. 큰 외숙은 누이들마다 결혼에 실패하여 의동생 앞에서 흉금을 털어 놓고 고민을 말했다.

부모님이 혼처를 구해 결혼 시킨 누이들도 행복하지 않았다. 첫째누이는 박찬영에게 시집갔는데 자식없이 일찍 죽었다. 둘째누이는 매부가 죽어 혼자서 친정 근처를 맵 돌고 있고, 셋째누이는 시집살이가 심하다고 소문이 무성하고, 누이들 때문에 심신이 불안하였다 한다.

 

큰 외숙은 술이 들어가면 죽은 누이를 생각하고 꺼이꺼이 울었다.

의형제를 맺은 유원준이 위로 차 방문 하여 누이들 때문에 괴로워하는 의형을 달래며 다섯째 누이 중매를 적극적으로 서두르게 되었다.

내 사촌 동생이 있는데 지금은 학생이지만 아우가 인물이 준수하고 마음씨도 착하고 ...둘째아들이라 결혼하면 딴 살림을 내 줄 것이고 ,시부모를 모시지 않아도 되고 ... ”

 당숙은 적극적으로 사촌동생 유세준을 소개했다.

당숙은 작은 어머니(내 할머니)의 성품을 모르셨다.

우리 할머니는 큰 며느리에게 시집살이를 지독하게 시킨 분이라 온 동리 팔방에 소문난 분이란 것을...

추억의 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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