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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삶/어린 시절

추억의 편린38-1안잠자기 아낙네

38-1안잠자기 아낙네

추수가 끝난 늦은 가을에 아낙이 아기를 업고 집채처럼 큰 짐을 이고지고 마을로 들어선다. 여인은 대나무로 역은 광주리. 채반. . 얼개미. . 똬리.솔을 팔러 다닌다.

어머니는 필요한 것을 여인에게 사시고 묵어가라 사랑채 뒷방을 내주셨다. 여인은 머슴들의 빨래도 돕고 집안의 잡일을 하다가 한 달동안 머무르다가 돌아갔다.

나막신을 깍고

내가 초등학교 입학 할 때 신이 귀해서 서울에 사시는 고모님이 천으로 신발을 만들어 보내주셨다. 일제시대에 내가 다니던 산곡간이학교에 운동화가 배급으로 나왔지만 그것도 짝짝이가 왔다. 한 켜래 뿐 수효가 부족했다. 대개는 짚신을 신고 다녔다. 아버지는 서울에서 가끔씩 고무신을 사오셨다. 일제 전쟁 막바지에는 물자가 귀하여 고무신을 사기 어려워 졌다고 하셨다. 그래서 아버지는 일 년에 한 번씩 갖바치를 데리고 오셨다. 갖바치는 사랑방에 묵으면서 식구들이 신을 가죽신을 만들어 주었다. 또 비 오는 여름에 신을 나막신도 깎아 주었다. 가죽신은 바닥이 빨리 달아 징을 박아 신었다. 가죽신은 발이 커지면 발이 아파 불편했고 비 오는 날 나막신은 굽이 높아 넘어져 발목을 삐기 쉬었다.

그래서 민중 들은 짚신이나 미투리를 만들어 신었다. 짚신은 바닥이 빨리 닳고 비가 오면 발이 젖었다. 짚으로 짚신을 많이 만들어 놓고 신어야 했다.

우리 집 사랑방에서도 언제나 일꾼들이 짚신을 삼고 있었다.

우리들은 아버지 덕분에 짚신을 신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