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로트랙과 매춘부
[쾌락의 여왕] 1892년 석판화로 제작.
로트랙은 다수의 포스터를 남겼다. 술집 홍보용 포스터는 그의 주 수입원이었다.
로트랙은 다수의 포스터를 남겼다. 술집 홍보용 포스터는 그의 주 수입원이었다.
[라 모르(Rat Mort)] 1899
[스타킹을 올리는 여자] 1894
[성병검사] 1894
[La Clownesse assise] 1896
[La Goulue Arriving at the Moulin Rouge with Two Women] 1892
앙리 마리 레이몽 툴루즈 로트랙(Lautrec 1864~1901). 길고 긴 이름만 들어도 가문의 위용이 느껴진다. 그의 부모 아델 드 틀루즈 로트랙과 알퐁소 드 툴르즈 로트랙은 보크스 성을 지배하는 명문가의 사촌이었다. 근친혼의 결과로 태어난 아들은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고
두 차례의 낙마 사고로 부러진 다리는 회복지 않았다.
로트랙은 15세 때 이후로 성장하지 않았고 152cm의 단신으로 살았다
난쟁이가 되어버린 귀족집안의 자제는 성을 떠나 파리의 몽마르트에 자리잡았다. 그는 카바레 물랑루즈(Moulin-rouge)에서 술을 마시거나 그림을 그렸고, 대개는 술을 마시면서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그리는 난쟁이라는 독특한 캐릭터에 대한 호사가들의 관심은 곧 그의 작품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갔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으며, 당대 유명화가의 화실에서 교육을 받은 적도 있었다.) 환락가의 단면을 포착한 그의 작품은 널리 인기를 얻었다. 그는 대중적인 인기에 부합하여 석판화 기법을 발전시켜서 대량으로 컬러 포스터를 제작하기도 했다. 그가 제작한 포스터를 구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로, 그는 서른일곱의 나이에 알콜중독으로 사망하기까지 몽마르트의 인기작가로서 명성을 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