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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삶/어린 시절

6.25 때 전사하신 우리 둘째 오라버니 유우근 (兪 佑根)

제63회현충일6월6일

유우근 6.25때전사


오늘 63회의 현충일을 집에서 맞이했다.

해마다 현충일에는 언니(87)와 나(81), 동생(77)과 함께 우리 삼남매는

 6.25때 전사한 오빠 유우근을 찾아 동작동 국군묘지 현충원을 갔었다.

그런데 금년에는  못갔다.

언니는 카나다 아들 집에 가고 나는 몸이 불편하여 안갔다.

동생에게는 열락도 하지 않았다.

우리 오빠는무덤도 없이 현충원 비각에 이름이 새겨져있다.

내년에는 삼남매가 6.25때 전사한 오빠를 찾아 뵈올지...


6.25 때 전사하신 우리 둘째 오라버니 유우근 (兪 佑根)


2011년 6월 6일 현충일

큰언니와 나는 동작동 국군묘지에서 만나기로 했다

6.25때 38선에서 전사한 오빠 유우근의 명복을 기리기 위해서다


유우근 

군번 2802101

계급 일병

소속 1사단

전사일 1950년 6월 25일

입대일 1949년 1월 18일




전사장소 옹진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에서 알려주었다.

1950년 6.25일 옹진 전투에서 전사하셨다.


우리 어머니는 국군이 어디에서 부상을 당했다하면 어디나 아들을 찾아가셔서 확인을 하시곤했다.

6.25때 한강 백사장에 국군의 시체가 줄비하다는 말을 들으시고 광주 산골에서 한강까지 걸어 가셔서 시체마다 아들우근인가 하고 울고 다니셨다.시체들이 부패하고 더욱이 총상 자리에는 파리들이 쉬를 쓸어 애벌래 구더기가 득실거려 어머니는 몇날을 침식을 전페하셨다.

날씨가 무더워 시신이 부패하여 분간하기 힘들다하시며 그래도 귀는 붓기가 덜하더란 말씀도 하셨다.

부산피난 시절 어머니는 병원마다 부상병이 있다고 하면 어디나 찾아 나스셨다.

어떤 때는 사망한 장병의 시체실도 찾아 아들을 애타게 찾아 헤매셨다.시신의 얼굴이 검게 변하여 행여 아들을 찾지 못했나 후회도하셨다.

시신에서 아들의 전사를 확인 못하신 어머니는 부상이 심해 불구가됐다면 자존심이 강한 아들이 집에 알리지 않을거라고 위로도 하셨다.

오빠의 전사 통지는 휴전이 되어도 오지 않았다.

단 행방불명이라는 통지가 왔을 뿐이다.

6.25 첫날에 전부대원이 전사 했단 말인가

나의 어머니는 돌아가실때까지 아들의 전사를 믿지 않으셨다.

아들이 군대 갈 때에 꽃다운 20살

해마다 아들의 나이를 세고 계셨던 어머니

언젠가 집으로 돌아 올거라고..


시신이 없는 전사자는 무덤도 없다.

단 탑안에  계급과 이름 석자만 잇을뿐


유해를 발굴하면 유전자를 감식하여 시신을 찾는다 한다.


                                           가운데 앉아계신분이 유우근



                                                             유우군



                                                                    유우근 사촌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