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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삶

국립서울현충원 현충탑 참배

국립서울현충원 현충탑 참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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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8 병장 유우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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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오늘 아침 7시30분경에 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동작동 국군묘지에서 10시 정각에 만나자고 약속을 했다.



나는 헌화용으로 양귀비꽃을 들고 갔다.
이수 전철역에서 내리니 참배객들이 모여 들어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다. 간신히 역을 빠져 나오니 꽃장사 떡장사 풍선 장사가 길 양편에 물건들을 놓고 호객행위로 귀가 따갑다. 앞이 보이지 않아 앞 사람만 따라갔다. 행사장마다 꽃 장사들은 아름다운 꽃을 가지고 와서 판다. 덕분에 꽃시장에 가는 수고를 덜어준다. 꽃을 파느냐고 아우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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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원 입구에 오니 축포가 울리고 묵념 싸이렌이 울린다.
거리에 사람들이 복잡하게 북적이다가 묵념 사이렌 소리가 나니 모두가 가던 길을 멈추고 고개 숙여 조국을 위하여 생명을 바친 순국 선열을 위하여 명복을 빈다. 나도 고개 숙여 묵념을 하며 학교 때 배운< 나는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읊어본다.
정문앞 약속 장소에서 언니를 만나 충혼탑으로 갔다 .

언니와 둘째 오라버나가 계신 충혼탑을 찾아 참배를 했다
< 병장 유우근> 32-7/8 위에서부터 9쟤 줄에 위패가 있다.
동생이 도자기로 꽃병을 해다가 놓았다는데 찾지 못해서 꽃을 벽 가까이에 다른 꽃들과 같이 세워 놨다.

우리 오라버니는 시신을 찾지 못해 묘역도 차자 못하고 이름 석자만 대리석 판에 사기여 있다
이 지하층에는 시신을 찾지 못한 영령의 위패 103.736위가 아직 시신을 찾지 못하고 있다.
어떤 가족은 떡이랑 술 과일을 가지고 와서 위패 앞에서 제를 지내는 가족도 있다.
625때 참전용사의 미망인은 거의 80고령이라 생존자가 얼마 안된다고 한다.


충혼탑안에서 제지내는 가족

묘소 위치 안내원에게 컴퓨터로 조회를 하니
병장 유우근 우리 오라버니는1950년 6월 26일에 옹진에서 전사 했다고 한다.
20세의 나라를 위해  젊음이 사라진 우리 우근 오빠의 명복을 두손 모아 빕니다.

아들의 전사를 모르신  어머니는 혹시 아들의 시신이라도 찾을가 하시고 한강 백사장에 가셔서 죽은 국군의 시신을 찾아 헤매시던 어머니가 떠 올랐다.
피난 시절 부산에서는 국군이 입원 해있다는 병원마다 찾아 다니시던 애절한 모정 나의 어머님.

625는 동족상잔의 뼈 아픈 전쟁이었다
 
초연히 쓸고 간 깊은 계곡..... 입속으로 흥얼대본다..

날마다 좋은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