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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것들/시사칼럼

달나라의 땅값 1에이커당 18-24달러


‘달나라 땅값을 알면 미국 집값을 예측할 수 있다?’

지난 17일 미국 로이터통신은 글로벌 투자은행 UBS의 보고서를 인용해 “올해 막대한 손실을 입은 부동산 투자가들이 손해를 만회하려면 ‘달나라 땅값’을 주목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로이터는 달나라 땅값이 미국 주택 시장을 12개월 앞서 예측하게 해 주는 선행지수라고 지적했다. 올 초부터 상승하기 시작한 달의 땅값을 감안할 때 2008년부터는 미국 주택경기가 풀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달의 땅을 사고 팔 수 있을까? 답은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인터넷 상에서는 에이커(acre·약 4047㎡) 당 18~24달러 선에서 ‘달나라 땅’이 활발히 거래되고 있다. 달나라는 부동산에 울고 웃는 한국을 닮았다. ‘버블 세븐’ 지역이 있고, 규제하려다 오히려 투기를 몰고 온 ‘부동산 정책’도 있다. 발 빠른 달나라 투자자들은 화성·목성 같은 ‘신흥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노다지의 기회는 60여 년 전부터 존재해 왔다. 우주인 닐 암스트롱(Neil Armstrong)이 1969년 인류 최초로 달 표면을 밟기 14년 전, 이미 그 땅을 뉴욕 시민들에게 팔아 넘긴 ‘선각자’가 있었다.

■미국판 봉이 김선달

1955년 11월 22일자 뉴욕타임스(NY Times) 기사에 따르면, 미국자연사박물관 헤이든천문관(Hayden Planetarium) 관장을 지낸 로버트 콜(Robert R. Coles)은 4500여 명의 투자자들에게 달나라 땅을 에이커(약 4047㎡) 당 1달러를 받고 팔았다. 투자자들은 양도증서와 함께 땅의 위치가 표시된 달 지도를 받았다. 지하 광업권, 그리고 인근에서 낚시와 스키를 즐길 수 있는 권리도 부여됐다.

땅을 판매한 콜은 시청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나름의 논리를 폈다. 그는 “인류가 곧 달에 갈 수 있게 될 것이고, 나는 첫 번째 탐사에 동행할 사람”이라며 “어차피 내 땅이 될 텐데 미리 양도하는 게 무슨 문제가 되느냐”고 썼다. 이에 대해 법률가들은 “소유권이 없는데 어떻게 양도할 수 있겠냐”며 웃어넘겼고, 헤이든천문관은 전(前) 관장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버렸다. 어쨌든 콜이 ‘확보’한 땅은 총 200만 에이커(약 81억㎡)로, 위치는 달의 서북쪽(지구에서 바라볼 때)에 위치한 코페르니쿠스 크레이터(crater·달 표면의 분화구)였다. 태양빛을 반사하는 달의 전면이어서 그 땅에 투자한 사람들은 밤하늘을 보며 뿌듯함을 느끼는 걸로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달나라의 ‘버블 세븐’

인터넷시대, 온라인상에는 달나라 부동산 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이베이(eBay)를 통해 땅을 경매에 부치는 사람까지 등장했다. 투자환경도 여러모로 변했다. 일단 땅값이 올랐고, 적절한 선에서 시가가 형성됐다. 현재 인터넷 사이트에서 판매되는 땅값은 에이커당 18~24달러 선이다.

달에도 풍수지리를 고려한 ‘버블 세븐’ 지역이 있다. 모 인터넷 업체 홈페이지에선 늪(Palus·달이나 행성 지명에 붙이는 이름)이나 계곡(Vallis)이 아닌, 산(Montes)이나 바다(Mare)에 접해 있는 곳을 ‘명당’으로 선별해 보통 땅의 1.5배가 넘는 값에 팔고 있다.

최고가는 역시 암스트롱이 첫 발을 디딘 고요의 바다(Mare Tranquillitatis·37.5달러)이다. 2위인 꿈의 호수(Lacus Somniorum·34.25달러)는 이름 덕을 봤다. 타우루스 산맥(Montes Taurus), 알페스 산맥(Montes Alpes), 맑음의 바다(Mare Serenitatis)도 에이커당 30달러대 초반에 이른다. 폭풍우의 바다(Oceanus Procellarum)와 구름의 바다(Mare Nubium)는 20달러대 후반인데, 2에이커를 한 번에 사면 35~45달러로 할인해 준다. 이 땅들이 왜 비싼지는 홈페이지를 아무리 찾아봐도 별다른 이유가 없다. 맑음, 폭풍 같은 날씨를 우리가 느낄 수 있다는 것뿐 아닐까. 그렇지만 달에는 우리와 같은 날씨 변화는 없고, ‘바다’로 보이는 곳도 평평한 현무암 지대일 뿐이다.

■외기권 우주조약

값이 오를 대로 오른 달 대신 화성이나 금성으로 눈을 돌려도 좋다. 두 행성은 각각 에이커당 24달러 정도에 팔린다. 돈이 넉넉한 사람은 포트폴리오를 분산하는 차원에서 달·화성·금성을 각각 1에이커씩 묶은 72달러짜리 세트를 고려해 볼 만하다. 다른 행성들은 아직 개발 중인지, 매물로 나와 있지 않다.

다른 업체 홈페이지의 질문란(FAQ)에는 ‘나사(NASA) 우주선이 제 땅에 내리면 임대료를 받을 수 있나요’, ‘다른 사람이 제 땅을 사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나요’ 등 절실한 질문들이 올라 있다. 답은 각각 ‘받을 수 없다’와 ‘우리가 막아 준다’이다.

달나라 부동산 업자들이 내세우는 법적 근거는 역설적으로, 달 투자를 규제한 조약이다. 바로 영국·미국·러시아 등 91개국이 서명해 1967년 10월 10일 발효된 유엔 외기권우주조약(Outer Space Treaty)이다. 조약은 각국 정부의 외계 부동산 소유를 금지하고 있지만 개인과 기업에 따로 규제를 두지 않았다는 허점을 파고 드는 것이다.

오늘날 달나라 부동산업자들은 “개인과 기업이 소유할 여지를 남겼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몽은 각자의 몫이지만, 향후 달나라 개발이 현실화됐을 때 이들의 권리가 보장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달나라 구경도 못한 ‘우주 부동산업자’들은 사기죄로 구속되기도 한다.

■UBS 보고서

이제 실속 없는 우주 여행을 마치고 지구상의 사업에 도움을 받을 차례다. UBS의 분석에 따르면 달 땅값은 미국 주택 가격에 평균 12개월 선행한다. 즉 1년 뒤의 미국 주택 경기를 예측하게 해 주는 것이다.

달 땅값은 2005년 말 이후 56% 추락해 지난 1월 16달러로 역대 최저점을 찍었다. 올 초부터 상승하기 시작해 12개월간 40% 정도 가격이 오른 달 땅값을 고려할 때, 내년도 미국 주택 경기 전망은 매우 밝은 셈이다.

UBS가 왜 이런 보고서를 내놓았을까. 투자은행들은 딱딱한 보고서를 읽는 투자자들의 기분전환을 위해 중간에 유머러스한 섹션을 집어 넣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번 문서는 2장 분량으로, 연말 휴가를 앞둔 경제분석가의 올해 마지막 보고서였다. 그는 “2008년도 즐겁게 시작했으면 한다”며 “이 보고서는 공식 예측이 아니며, 투자 자료로 활용하지 말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아직도 달이 투기 대상으로 보인다면 한 부동산 업체 홈페이지에 나온 다음 문구를 참고할 수 있다.

“달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달은 희망, 낭만, 성취, 도전이 한데 어우러진 상징물입니다. 변덕스럽게 대하는 장난감이 아니죠. 달이나 다른 행성의 땅을 사게 된다면 그냥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가끔 하늘을 보면서 ‘저 달의 일부는 내 거야’라고 말할 수 있으면 족하니까요.”

역시 사기꾼들이 말은 잘 한다. 가끔 밤 하늘을 올려다 보면, 부동산에 짓눌린 마음을 풀 수 있을지도 모른다. 땅문서도 필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