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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감상

얀 반 에이크의 헤트 제단화의 비밀

얀 반  에이 의 헨트 제단화의 비밀
<헨트 제단화〉를 펼친 모습. 1432년 완성. 3.5×4.5m 헨트의 성 바보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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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트 제단화〉를 펼친 모습. 1432년 완성. 3.5×4.5m 헨트의 성 바보 교회.

〈헨트 제단화〉는 현재 성 바보 교회에 전시되어 있다. 그러나 그 사이 우여곡절이 없지 않았다. 유명세 덕분인지 나들이가 잦아서 작품이 처음 완성되고 나서 100년쯤 뒤에는 이미 반 누더기가 되었다. 또 제단화의 묵은 때를 벗긴답시고 어설픈 작자가 달려들었다가 제단 받침부 그림 프레델라가 거덜났고, 1550년에는 그 당시 최고의 실력자로 인정받던 란셀로트 블론델과 얀 반 스코렐이 복원에 달려들었다. 이들의 덧칠과 그 후 보존을 위해 발랐던 니스층은 브뤼셀 복원 팀이 대부분 제거했다. 또 때맞추어 밀어닥친 개신교의 성상파괴 운동의 불똥을 피해서 낱낱이 분해된 상태로 성 바보 교회의 종탑에 갇혀서 비를 맞다가, 결국 칼뱅주의자들에 의해 시청으로 보내진다. 시청에서 20년 동안 유배를 거친 뒤 다시 성 바보 교회로 돌아와서 200년쯤 자리를 보전하는가 싶더니, 프랑스 대혁명 와중에 프랑스까지 끌려갔다가 1816년에 워털루를 거쳐서 다시 헨트로 귀향한다. 제단화 펼친 그림의 하단부 맨 왼쪽 ‘정의의 기사’ 그림은 1934년에 누군가 떼어간 뒤 현재 복제본을 붙여 두었고, 상단부의 아담과 하와는 브뤼셀로 팔려갔다가 베르사유조약 직후 다시 원래의 제단화에 붙여서 오늘날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제단화의 펼친 그림 상단에서는 무엇보다 지상에 속하는 존재인 아담과 하와가 천상의 사건인 데에시스나 천사들의 찬양과 똑같은 위계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어색하다. 또 그림마다 짜임새가 제멋대로인데다, 등장인물의 크기도 들쭉날쭉해서 눈에 거슬린다.
한편 펼친 그림의 하단부는 다섯 장의 그림을 붙여 놓았지만 전체 구성이 단정하게 통일되어 있다. 먼저 중앙 그림은 어린 양의 경배 장면이다. 어린 양이 피를 흘리는 제단 주위를 천사와 구약의 예언자, 종려가지를 든 순교자와 성처녀들의 성스러운 행렬이 에워싸고, 그 뒤로 여러 민족, 여러 언어의 순례자들이 끝도 없이 몰려든다. 붉은 천을 씌운 제단 이마에는 “이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 양이 저기 오신다” 그리고 “예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는 문구가 씌어 있고, 어린 양의 가슴에서 흘러내리는 붉은 피가 미사의 성배를 채운다. 제단 아래 팔각형 샘은 생명의 샘이다. 제단과 샘을 한 축에 놓은 것은 죽음을 생명으로써 이기는 구원사의 논리다. 또 제단 위쪽으로 날아 내려오는 성령의 비둘기가 황금빛살을 뿌리며 순결한 피의 의미를 알린다. 여기서 제단 위의 어린 양은 어린 목자이자 구원의 주님을 뜻한다.

“옥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셔서 / 그들을 생명의 샘터로 인도할 것이며 /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실 것입니다.”(묵시록 7:17)

또 팔각형 생명의 샘 앞쪽에는 예언자와 열두 제자가 좌우로 앉아 있고, 그 뒤로는 예수 탄생 이전의 의인들과 이후의 성직자들이 모여 있다. 왼쪽의 의인들 가운데 흰 옷을 걸치고 월계관을 든 베르길리우스가 눈에 띈다.
어린 양의 경배 그림 왼쪽으로는 기사들의 행진이 보인다. 정의의 기사, 정의의 재판관 들이다. 맨 왼쪽 기사들 가운데 제일 앞쪽을 휘베르투스, 세 번째를 얀 반 에이크의 초상으로 보는 미술사학자들도 있다. 또 두 번째 그림의 말 탄 기사들은 중세시대에 유행했던 아홉 영웅의 목록과 동일시되기도 했다. 헥토르, 알렉산드로스 대왕, 카이사르, 여호수아, 다윗, 유다 마카베오, 아더왕, 카를 대제, 부이용의 고트프리트가 그들인데, 이 주장이 옳다면 맨 꽁무니에 금관을 쓴 기사가 카를 대제일 것이다.

어린 양의 경배 오른쪽 그림에는 은자들이 다가온다. 검은 옷의 은자들이 서 있는 한켠으로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막달레나와 마리아 에깁티아카가 벼랑 뒤에 모습을 드러낸다. 둘 다 죄 많은 과거를 참회로 씻었고, 광야에서 고행을 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오른쪽 마지막 패널에는 순례자들이 붉은 겉옷을 걸친 크리스토포루스를 뒤따른다. 고깔에 조개껍데기를 붙인 성자가 큰 야고보일 것이다. 여기서 두 패널에 나누어 그린 은자와 순례자의 무리는 그리스도교의 두 덕목인 생각하는 삶과 일하는 삶의 소중한 가치를 나타낸다.
그런데 〈헨트 제단화〉에는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다른 제단화들이 단골 주제로 삼는 지옥 풍경도 천국 풍경도 그려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예사 제단화가 아니라 교회의 어떤 특정한 축일을 기념하는 그림이 아니었을까? 이 의문은 우연찮게 해결되었다. 13세기 제노바의 주교 야코부스 다 보라기네가 펴낸 《황금전설》을 보면 만성절의 기원을 설명하는 대목이 실려 있는데, 이 장면이 어린 양의 경배를 그린 〈헨트 제단화〉의 아래 그림과 정확히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황금전설》에서는 베드로 대성당의 교회지기가 꾸었던 꿈을 이렇게 설명한다.
“지고하신 하느님이 옥좌에 앉으셨고, 양편으로 천사들의 합창대가 에워쌌는데, 눈부신 왕관을 쓴 성처녀들 가운데 성처녀 마리아와 낙타 털옷을 입은 요한이 다가왔고, 수많은 순결한 처녀 무리와 주교 복식을 한 덕망 높은 원로 무리가 뒤따랐다. 같은 옷을 입은 헤아릴 수 없는 찬양대의 무리와 기사들, 그리고 수없이 많은 만방의 무리가 그 뒤를 따라왔다.”
뒤이어 성 베드로가 교회지기의 꿈에 나타나서 연옥 풍경을 보여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교황 성하께 이 사실을 알려서 그날을 모든 성인을 기념하는 만성절로 정하고 기리게 했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