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란이 벌써 70년.
저는 6.25 때 옹진 전투에서 산화한 둘째 오라버니를 생각합니다.
둘째 오라버니가 겨울 방학에 시골집 산곡에 왔었습니다.
그날 밤
동네에서 군인을 모집하는 제비뽑기가 있어 저의 오라버니가 영광스럽게 뽑혔습니다.
어머니가 엿과 인절미를 만들어 오빠를 면회 가셨습니다.
추운 겨울이라 떡은 얼었고 엿은 딱딱하여 잘 먹을 수사 없었다고 어머니는 두고두고 후회하셨습니다.
6.25가 나기 한 달 전 오빠가 휴가를 와서 일꾼 섬 봉이를 내보냈습니다. 그도 군에 갔는지 기억에 없습니다.
오빠가 휴가를 왔다가 돌아간 후 그리고 625가 터졌습니다. 그 후론 오빠의 소식이 끊겼습니다
어머니는 6.25 때 오빠를 찾아 한강변 국군의 시체가 있다는 곳을 찾아 헤매셨습니다.
피난을 가셔도 병원마다 혹시나 아들이 부상당하여 누워 있을까 찾아다니셨습니다.
어머니도 하늘나라에 가시고 우리 형제자매도 4명만 남았습니다.
지금 우리 오라버니는 현충원에 탑 안에 이름만 전사자로 남아 있습니다.
아직도 유골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의 형제자매는 위로 오라비가 2, 언니가 둘, 남동생이 둘 합하여 7남매였습니다.
둘째 오라버니가 6.25 때 전사하시고 손 위 언니가 80으로 하늘나라에 가셨고 막내 남동생이 작년에
하늘나라에 갔습니다.
7남매 중 3남매가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언니와 남동생 그리고 나는 해마다 꽃다발을 들고 현충원에 가서 둘째 오라버니를 뵙고 옵니다.
그러나 금년에는 코로나19 때문에 못 갑니다.
코로나도 안정되고 들째 오라버니의 유골도 찾아 안장해야겠지요
오늘은 살아 있다고 이 글을 씁니다.
좋은날 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