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만에 본 비디오 테잎
화가들과 1991년 여름 방학에 중국여행을 한적이 있었다.
그때 석포 노달수 화백이 무비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테잎을 나누어 주었다
어제 처음으로 17년 만에 중국여행 테잎을 꺼내 아들과 보았다
“기사 감이네!”
나는 사진이 멋지게 잘나와 기사감이라고 하는지 알았더니 17년을 고수라니 잠재운 엄마의 무심한 성격이란다
“내 개인전 때 찍은 비디오도 아직도 보지 못했다’
“아니 보지 않았다”
개인전 테잎은 1984년, 어언 24년이 흘렀다
보고 싶은 마음이 없기야 하랴 만 우리 집에는 비디오가 없다
비디오를 구입하면 볼려고 했는데 작만을 못했었다
5섯살 먹은 손주 매트가 게임을 하던 비디오를 유학을 가면서 우리 집에 두고 갔다
작년 5월에 떠났는데 나는 기치라 어떻게 사용하는지 몰라 현재까지 무심히 있었다
매튜가 떠난지 또 2년이 지나갔다
처음 중국이 개방 되여 영산 백두산을 오르는 것이 대단한 영광이었다
구상 선생님의 외침이다
“아 백 두 산 !”
화면의 낯익은 화가들이 젊게 보인다.
선학균 교수
김포공항에서 출국 할 때부터 백두산에 오를 때까지의 일주일간에 기록이 40여분으로 단축 되어 있다.
새삼 시간을 꺼구로 돌려 과거 시간 여행을 하고 있다
17년 전에 내 모습.
남보다 앞장서서 새것을 바라보는 저 여인!
추억으로 닦아온다
사진 속에 나는 매일 옷을 갈아 입고 모자를 바꿔 썼는데 나는 서울에서 사간 밀집모자를 애용했다. 그 밀집모자가는 편리하여 햇볕도 가려주고 비올 때 우산도 되었다
옷 색에 맞추어 리봉만 바꿔주면 내겐 훌륭한 패션 모자다
밀대로 만들어 때도 타지 않고 언제나 새 것같은 모자다. 나는 꽃밭 손질을 할 때나 약수터에 갈 때에, 심지어 미국여행 할 때도 애용했던 그 밀짚 모자가 화면에 보인다
계림에서 선상 여행은 뱃멀미 때문에 괴로웠다
대나무 두 개로 엮어 만든 배를 타고 큰 부채를 팔러 배로 닦아오는 소년이 보이고 물소도 보인다
계림의 올망졸망한 산들이 지나간다
공산국가 중국에서 계림은 유일한 자유도시다.
여행도 자유롭게 하고 물건도 자유로이 팔수 있는 곳이다
화가 들은 단계석 붓 같은 문방사우에 관심이 많다
북경의 자금성을 거쳐 이화원이 보인다. 사치와 화려함의 극치를 이룬 중국 황제들이 유산으로 남겨준 문화다
중국은 공산 홍위병들이 손에 닿을 수 있는 문화재를 다 때여 부셔버렸다고 가이드가
전한다.. 오늘날 그 때문에 문화가 몇 십 년 뒤떨어져 있다고 한다
장개석이 대만으로 옮긴 문화재가 이제는 더욱 빛을 발한다
연변 반점 앞 공터에 중국인들이 그린 화선지 그림을 죽 늘어 놓고 팔고 있다. 조잡한 그림
용정중학교 앞정문에서 교장선생님의 안내로 저항시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버스를 타고 꼬불꼬불 비포장 도로를 5시간을 더 가서 백두산에 오를 수 있었다.
우리의 영산 백두산!
아 백두산 !
스케치를 했다
17년만에 세상이 얼마나 변했는가.
딕카로 동영상을 찍어 컴에 올려보고 폰으로도 동영상을 찍어 본다.
편리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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