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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삶/어린 시절

추억의 편린 아버지의 매채 18 아버지의 매채 18 여름방학 때 오빠들과 큰 언니가 서울에서 산골 집에 내려왔다. 어머니는 오빠들과 언니가 집에 오면 맛있는 것을 만들어 주시며 즐거워 하셨다. 큰 오빠는 얼굴색이 희고 눈도 크며 키도 헌출하게 커서 인상이 선하게 보였다. 마음씨도 착해서 동생들을 잘 데리고 놀았다. 작은 오빠는 큰 오빠보다 키가 더 크고 다부진 체형을 가지고 있었다. 큰오빠가 산딸기 화채가 먹고 싶은데 산딸기를 따러가자 하면 나는 오빠를 졸졸 따라갔다. 큰 오빠와 나는 생각하는 것이 비슷했다. 큰 오빠가 서울에서 집에 오면 소설책만 읽었다. 세계문학전집도 사가지고 내려왔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화가 많이 나신 것 같았다.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고 소설책만 읽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셨다. 아버지는 큰오빠에게 매채를 가지고..
추억의편린 시누이와 올케16 (머릿기름을 얼굴에 바르시고) 시누이와 올케16 (머릿기름을 얼굴에 바르시고) 어머니 처녀 때 외삼촌이 화장품을 사오셨다고 했다.꼬마 외숙모와 어머니는 얼굴에 그것을 바르시고 거울을 보니 얼굴이 너무 반지르 했다고 하셨다. 후일 알고 보니 머릿기름을 두 분이 얼굴에 바르 신 것을 아시고 두고두고 웃으셨다고도 전한다. 16 추억늬편린16 계속
추억의편린 어머니의 숙제 14 어머니의 숙제 14 골무 만들기겨울 방학 때 큰 언니가 서울에서 산골에 내려왔다.어머니는 헌 자투리 헝겊을 내주시면서 골무를 만들어 보라하셨다.큰언니 작은 언니 나, 그리고 부전이. 부전이는 할머님께서 내가 아기 때 업어주라고 친정에서 데리고 온 언니다.우리 넷은 화로 옆에 둘러 앉았다.부전이가 냄비에 밀가루를 개어 풀을 쑤었다.풀이 빨리 쑤어지지 않는다고 나는 인두로 화로 안에 불을 헤치면서 “후 후” 입김을 불어 넣었다. 풀이 보글보글 끓기 시작했다. 잿가루가 날리어 부전이 눈에 들어갔다고 부전이가 내게 눈을 흘기며 질금 댔다. 부전이는 내가 아기일 때 나를 업고 나가 동네 아이들이 잣치기를 한다거나 땅 뺏기 놀이를 하면 나를 맨땅에 내려놓고 남자애들과 함께 놀았었다고 한다. 나는 땅바닥에서 흙투성이..
추억의 편린 초등학교 생활 시작 13 초등학교 생활 시작 13 1945년 산곡 간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나는 학교 가기를 싫어했다.언니를 놀렸던 죄도 있지만 학교가 멀었다.후에 알았지만 내가 언니를 놀려서 학교에 못들어 간 것이 아니라 나이가 어려서 입학이 허락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길을 가다가 잘 넘어졌다. 얼굴과 무릎이 성할 날이 없이 다치었다. 어머니는 매채를 치마폭에 가리시고 학교 가는 나를 동구 밖까지 따라오셨다. 내가 걷지 않고 멈추면 어머니는 살짝 매채를 꺼내시는 척 흉내를 내신다.나는 뒤돌아보고 한 발자국씩 앞으로가고 또 뒤돌아보아 어머니가 잠자코 계시면 서 있기를 되풀이. 어머니치마폭의 매채가 밖으로 나오면 나는 그제야 걸어서 학교에 갔다.어머니 덕에 결석을 하지 않고 학교를 잘 다녔다.나는 놀기에 바빠 숙제를 잘 잊어 버..
추억의 편린 초등학교 생활 13 초등학교 생활 13 1945년 산곡 간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나는 학교 가기를 싫어했다.언니를 놀렸던 죄도 있지만 학교가 멀었다.후에 알았지만 내가 언니를 놀려서 학교에 못들어 간 것이 아니라 나이가 어려서 입학이 허락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길을 가다가 잘 넘어졌다. 얼굴과 무릎이 성할 날이 없이 다치었다. 어머니는 매채를 치마폭에 가리시고 학교 가는 나를 동구 밖까지 따라오셨다. 내가 걷지 않고 멈추면 어머니는 살짝 매채를 꺼내시는 척 흉내를 내신다.나는 뒤돌아보고 한 발자국씩 앞으로가고 또 뒤돌아보아 어머니가 잠자코 계시면 서 있기를 되풀이. 어머니치마폭의 매채가 밖으로 나오면 나는 그제야 걸어서 학교에 갔다.어머니 덕에 결석을 하지 않고 학교를 잘 다녔다. 나는 놀기에 바빠 숙제를 잘 잊어 버렸다..
추억의 편린 작은 언니의 선생님 13. 작은 언니의 선생님 13. 내가 다섯 살 때 작은 언니 선생님이 가정 방문을 오셨는데 언니가 선생님을 보고 숨었다.나는 일인 선생님 앞에서 언니 흉을 보면서 놀렸다.“세이꽁! 세이꽁! 말라 빠진 세이꽁!”언니는 나 때문에 선생님께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었다.그 다음 해 아버지께서 나를 초등학교에 입학 시키려고 학교에 데리고 가셨다. 산곡에는 정규학교는 없고 간이 학교만 있었다. 정규학교는 10여리 떨어진 동부면 신장에 있었다.일본 선생님이 나를 알아보시고 “네가 세이꽁하고 형을 놀리던 아이구나 !”하고 아버지와 무슨 얘기를 하시며 웃으셨다. 나는 입학이 허락되지 않았다.나는 형을 놀린 것이 부끄러워 꼼작 하지 않고 한곳에 서 있었다. 이제 학교도 다니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 너무 긴..
아버지의 감기 특효 약 12 우리들이 감기라도 들어 콜록이면 아버지는 석류를 달여 열을 내리게 하여주셨다. 호두는 밥 짓는 솥에 따로 넣어 쪄서 호두 기름을 내어 먹여주셨다. 나는 배 엿은.. 아버지의 감기 특효 약 12 우리들이 감기라도 들어 콜록이면 아버지는 석류를 달여 먹여 주셨다. 석류에 꿀을 타서 먹으면 밋도 좋다. 아버지는 열을 내리게 하여주셨다. 석류.호두가 감기 특효약이다. 호두는 밥 짓는 솥에 따로 넣어 쪄서 호두 기름을 내어 먹여주셨다. 나는 배 엿은 검고 써서 먹기를 싫어했다. 감기 몸살에는 석류 고운 것과 호두 기름이 특효약이었다.추억의 편린 12 계속
추억의편린석류나무의 애착 11 석류나무의 애착 11아버지는 가을에 석류나무 관리를 특별히 하셨다.석류는 부모님 결혼식 때 앞마당에 주렁주렁 열렸던 기억으로 우리 집에는 유별나게 석류나무를 많이 심으셨다. 석류나무는 아열대 식물이기 때문에 한기를 많이 탔다.석류나무의 겨울 채비는 무덤처럼 이랑을 깊게 파고 짚을 깔고 석류나무를 뿌리 채로 쓸어 넣고 또 짚으로 덮고 널빤지를 뚜껑처럼 그 위에 덮고, 마지막으로 그 위에 흙을 묘지처럼 봉긋하게 덮어주었다. 그래야 겨울에 동해를 입지 않는다고 했다. 가을에 배를 일부를 팔고 배를 지하창고에 저장했다가 겨울에 팔기도 했다배 저장은 움막 같이 보이는 지하 창고에 있었다. 우리 집 광에는 먹을 것이 많았다.석류를 따서 광주리에 수북이 담고 함지박에는 감을 켜켜이 담아 놓으면 떫었던 감이 숙성되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