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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삶/어린 시절

추억 편린 49 둘 째 오바의 역마차 49 둘째 오빠의 역마차 둘째 오빠는 학생인데 군마를 사서 역마차를 하자고 했다.어머니가 허락하셨다.샘재의 옥답을 팔아 역마차를 샀다. 둘째 오빠의 마부는 시골에서 산모가 아기를 낳으면 사산하는 여인이 있었다. 둘째도 셋째도 사산 했다는 말을 들으셨다. 그런데 또 임신을 했다는 말을 들으신 어머니는 양식을 대주고 아기도 받아주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산모가 먹지 못해서 아기를 제대로 낳지 못한다고 생각하셨던 모양이었다. 그 부인의 남편이 마부로 일을 잘한다고 했다. 그런데 술을 좋아하는 마부가 갑자기 죽었다고 했다. 둘 째 오빠는 말들을 집으로 데리고 왔다.군마라 키도 크고 온순했다. 둘째 오빠는 나를 말 등에 태우고 동네 한 바퀴를 돌며 새총으로 새도 잡았다. 둘째 오빠는 여러 형제 중 나를 유난히 예뻐..
추억의 편린 48오빠의 첫번 째 사업 48 오빠의 첫 번째 사업 오빠는 첫 번째 사업으로 배 과수원을 없애고 거기에 개구리참외와 일년감을 심기로 했다. 일년감은 토마도다. 일년감은 메추리알만큼 크며 흰색. 노란색. 빨간색이 있었는데 보기에 아름다웠다. 나는 이상한 냄새 때문에 먹지 않았다. 오빠는 겨우네 사람을 사서 배과수원의 배나무를 베어냈다. 이배나무는 백부가 농대를 졸업하실 때 가장 좋은 신풍종의 배 종자를 심으신 것이다. 내 아버지가 20여년을 열심히 가꾸어 이루신 것을 오빠의 신식물의 생각이 하루아침에 변화되어 배나무가 땔감이 되어 버렸다. 배 밭에 개구리참외를 심었다. 고골 개구리참외가 유명하다. 겉이 개구리처럼 얼룩얼룩 하고 속은 붉은 것이 맛이 있었다. 참외가 익을 쯤이면 산에서 여우가 내려와 참외를 갉아먹었다.또 일년감도 심..
추억의 편린 45할머니의 분노 45 할머니의 분노 할머니는 생떼같던 젊은 아들이 죽자 그 억울함이 분노되어 새사람에게 표출하셨다.갓난아기에게는 “애비 잡아먹은 놈!”하고 미워하셨고 갓 시집온 손주며르리에게는“시 애비 잡아먹은 요물!”이라고 구박하셨다.새사람이 시집 올 때 귀신이 따라와 시집을 망치게 했다고 화가 많이 나셨다. 사흘 동안 굿을 하여 손주며르리가 시집 올 때 가지고 온 옷가지며 패물을 몽당 무당에게 내주고 할머니의 분노는 조금 사그라들었다.추억의 편린 45게속
추억의 편린 46오빠도 디프테리아의 전염되고 46 오빠도 디프테리아의 전염되고 스물 한 살의 새신랑도 티프테리아의 전염되었다.오빠도 아버지처럼 될까봐 걱정을 했다. 유명한 의사를 데려오고 좋다는 약을 다 쓰고 다행히 오빠의 병세는 차도가 있었다. 온 집안 식구가 오빠를 살리는데 주력 했다. 아버지가 움막의 저장해 놓은 배를 긁어 먹이기도 하고 오빠가 먹던 배를 퇴비 간에 던지면 동네 아이들이 주워 먹었다. 그래도 다행스럽게 동네에는 전염병이 퍼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동네에 전염병이 퍼지지 않도록 가정 위생에 대해서 설명을 하셨다. “음식은 끓여먹어라. 물도 끓여 먹어라. 옷가지도 삶아 빨아 입어라. 사람 많은데 가지마라.” 오빠가 열이 내리자 지팡이를 짚고 집안을 헤집고 다녔다. 큰언니에게 도로프스와 초콜렛을 사오라고 귀찮게 졸라댔다. 큰 오빠는 ..
추억의 편린 47 일본서 새문물 새로운 것을 47 일본서 새 문물 새로운 것을 배워 온 신식 새신랑 병이 나아 몸이 회복된 오빠는 어머니를 졸라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어 했다.오빠는 젊은 패기에 차있었다.무엇이든지 잘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양 어머니를 설득 했다. 어머니는 오빠의 계획을 들으시고 겉으로는 좋아하셨지만 반면 걱정도 크셨다.아버지가 아니 계시는 시골 생활이 어머니에게는 큰 부담이 되셨다. 큰 외숙이 오셨을 때 어머니가 외숙에게 의논을 하셨다. 외숙은 오대 째 내려오는 이만석의 재산을 지키지 못하고 선영의 조상묘도 모두 화장하여 강산에 뿌리신 분이다. “허! 하고 싶다면 해야지. 타고 난 운명을 거스를 자 있는가 ?”외숙은 바랭이 짐을 어깨에 메시고 쓸쓸히 되돌아가셨다.추억의편린 47
추억의 편린 43 40세의 젊은 과부 43 40세의 젊은 과부 1946년 1월 2일 엄동설한의 겨울 어머니의 삼베로 만든 소복은 새하얗다 못해 파랗게 보였다. 머리를 풀고 수질(상복을 입을 때 짚에 삼 껍질을 감은 둥근테)를 머리에 얹은 상복차림의 어머니 모습은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오른손에는 그대로 기브스를 하시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픈 손으로 밤새워 아버지의 수의를 지어 입혀드리고 운구차에 아버지를 모시고 아기를 안고 오셨다. 할아버지를 전날 밤에 신장에 있는 백부댁으로 가마에 태워 모셔갔다. 부모 앞에서 자식이 먼저 죽으면 불효라 하는데 아버지는 돌아가시어 불효자였다. 할머니는 아기 옆에서 연신 “아이고, 아이고, ....”를 끊임없이 곡을 하셨다. 나중에는 눈물 마져 마르신 듯 눈물 없이 소리죽여 우시고 계셨다. 나는 안방 문..
추억의 편린 44아버지가 없는 아이들 44 아버지가 없는 아이들 1946년 아버지가 디프테리아 전염병에 돌아가신 후나는 아버지 없는 아이가 되었다. 어머니는 아버지 없는 빈자리를 채워주는데 각별히 힘써 주셨다.나는 아버지가 없는 아이가 아닌 것처럼 행동 했다. 예쁜 옷과 운동화를 신고 학교에 갈 때는 어머니가 큰 길까지 바라다 주셨다. 학교가기 싫다고 떼를 쓰면 어머니는 치마폭에 감춘 매체를 살짝 꺼내는 시늉을 하셨다. 산곡 간이 학교에 다니는 개울가 남이도 아버지가 없다. 남이가 다섯 살 때 마부였던 남이의 아버지는 천호동에서 어느 추운 겨울 날 술 취하여 마차에서 떨어져 객사했다고 전한다.우리 유모였던 우식이 아버지는 몇 년 전에 징용으로 일본에 끌려가서 우식이도 아버지가 없다. 우식이모는 과부 아닌 과부로 시부모님을 모시고 어린 두 남..
도자 박물관에서 언니 도자 박물관에서 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