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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삶/어린 시절

김유정의 어린시절

김유정의 어린시절

유정은 서울 종로구 운니동(당시 진골)에서 아버지 김춘식씨와 어머니 청송 심씨 사이에 

8남매의 7째로 태어났다. 위로 형님이 한분 누이가 5분 그리고 유정.  막내 여동생이 있다.


김유정


유정은 서울종로구 운니동 100번지에서 태어났다.  

유정의 셋 째 누님이 유정을 낳을 때 태를 가지고 나오는 것을 보셨다고 전한다

보통 신하의 집은 100칸을 넘을 수 없는데 유정의 집은 100칸이 넘는 큰 집이였다고 한다. 

윗 대에 왕실과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부자는 3대가 잘 살기 어려운데 유정의 가문은 5대가 부자였다. 

춘성군과 홍천에 대대로 내려오는 농토가 만석꾼이라 전한다.


유정의 부모님은 용이 하늘로 오르다 땅속으로 들어간 태몽 때문에 

유정은 후에 유명하게 될 것이나 명이 짧을 것이라고...

어린 유정의 건강을 항상 걱정하며 보살폈다.

유정이 헛배앓이를  하여 담배를 어렸을 적부터 피우게 했

.담배를 피우면 배가 나았다. 

긴 담배대에 권련을 끼우면 하인이 불을 붙쳐주면 버금버금 피었다고 한다.

유정은 후에 유명하게 될 것이나 명이 짧을 것이다고...


유정의 어머니는 평소 남색 치마를 입고 흰저고리를 잘 입으셨는데 

부인이 마루에 나오시면 선녀처럼 고우셔서 하인들이 눈이 부셔하였다한다.

집에 모친 전용 목간이 따로  있어 혼자만 목욕을 하셨는데

 피부가 백옥처럼 빛나시고 주위가 훤하게 아름다우셨다한다.

그런데 유정은 어머니 젖이 부족하여 유모의 젖도 먹고 자랐다.

어린유정도 모친을 닮아 피부가 곱고 귀티나게 잘생겼다.


추석이나 명절 같은 때에는 춘천에서  음식을 작만하여  배로 음식을 덕소까지 나르고 

덕소 부터 서울 진골까지는 지개로 나르는데 음식이 식지 않게 항아리 안에 담아 날랐다한다. 

덕소를 떡소떡소 하기도했다.

음식을 나르는 하인들의 모습이 길게 줄을 지어 끝이 안보였다 한다.


명절이나 제사가 끝나면 음식을 큰 목판에 담아 하인 둘이 마주 잡아 들고

유정의 방으로 가지고 가면 유정이 친구에게 나누어주고 

아랫 사람에게도 손수 나누어 주는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유정이 어렸을적에는 호의 호식 하고 자랐다.


그런데 유정의 모친이 유정이  7세에 돌아가셨다.

어린 유정은 슬프고 외로워 했다.

형과 모친의 상식을 아침저녁으로  올렸다고한다.


유정이 헛배앓이를  하여 담배를 어렸을 적부터 피우게 했다. 


긴 담배대에 권련을 끼우면 하인이 불을 붙쳐주면 버금버금 피었다고 한다.

유정의 부친은 전라도에서 한지를 마차로 가득 사와 홍두깨를 입혀 곱게 다듬어

 아들딸들에게 독선생를 두어 한문.시서화를 가르치었다.


 유정은  하모니카를 잘 분다 .또 바이얼린도 배웠다.

온집안 식구가 유정을 위하여 더 사랑하고 더 애듯하게 돌보았다.

유정의 나이 9살에 아버지도 돌아가셨다.

유정은 운니동 집 근처에 단성사가 있다.

유정은 틈만 나면 단성사에 들어가 무료 관람했다.

유정 사직동 누님 조카영수

재동 보통학교에서는 공부도 잘하였다.

{유정의 조상중에는 숙종(肅宗)의 외조부인 청풍 부원군 김우명이 있다. 

숙종의 모후인 명성황후(1642~1683)는 청푼부원군 김우명의 따님이시다.

유정의 할아버지 김익찬은 사마좌임금부도사(司馬莝임任禁府都事)지냈다.

아버지 김춘식은 (사마좌임군 부주사(司馬莝任軍部主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