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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것들/교양과 상식

다산 정약용의 피서법

조선 후기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인 1824년, 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자 『여유당전서』에 ‘더위를 물리치는 여덟 가지 멋진일(消暑八事)’이라는 시를 지어 지혜로운 피서법을 제안했다.

정약용

그 첫째는 송단호시(松壇弧矢)인데, ‘솔밭에서 활쏘기’를 뜻한다.

 둘째는 괴음추천(槐陰韆)으로 ‘느티 나무 그늘에서 그네타기’이다. 

셋째는 허각투호(虛閣投壺)로 ‘빈 누각에서 투호 놀이’를 하는 것이다.

 넷째 청점혁기(淸奕棋)는 ‘깨끗한 대나무 자리에서 바둑 두기’이다. 

다섯째는 서지상하(西池常夏)로 ‘서쪽 연못의 연꽃 구경하기’를 제안했다. 

여섯째는 ‘동쪽 숲속에서 매미소리 듣기’를 뜻하는 동림청선(東林聽蟬),

일곱째는 ‘비 오는 날 시 짓기’를 뜻하는 우일사운(雨日射韻),

여덟째는 달밤에 개울에서 발 씻기를 뜻하는 ‘월야탁족(月夜濯足)’이다.

 

소나무 숲에서 활쏘기 놀이를 즐기면서 더위를 식히고, 

느티나무 그늘 아래에서 그네를 타면서 온몸으로 바람을 만끽했으며,

 대자리 위에서 바둑을 두며 외부 환경이 아닌 마음과 정신에 집중했다.

 선비들은 더운 날씨에 책을 읽기 힘들 때면 주위 사람들과 술내기 바둑을 두면서 당사자는 물론이거니와 옆에서 구경하는 사람에게도 대접하며 서로 어울려 여유를 즐겼다. 

연못에서 고운 연꽃을 감상하며 청아한 여름 풍경을 만끽하는 방법은 어떤가. 해가 서산으로 지려할때 어느 때보다 낭낭하게 울려 퍼지는 매미소리를 들으며 더위를 식히는 방법도 낭만적이기 이를 데 없다.

 특히 농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여름날 울려 퍼지는 매미 소리가 얼마나 시원한지 잘 알 것이다. 

그래서 한 시인은 “자줏빛 놀 붉은 이슬 맑은 새벽하늘에 / 적막한 숲 속에서 첫 매미 소리 들리니 / 괴로운 지경 다 지나라 이 세계가 아니요 / 둔한 마음 맑게 초탈해 바로 신선이로세 / 매미 소리만 듣고도 모든 것을 초탈해 신선이 된다면 더위쯤이야 문제될리 없다”라고 읊었다.

‘비 오는 날 시 짓기’는 비오는 날에는 다른 일을 할 수 없으니 농막 안에서 시를 지으며 더위를 보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1,000편의 시를 지어놓고 어떤 운자(韻字)가 어려웠는지를 하나 하나 따지다 보면 저절로 더위가 사라진다고 했다. 

여름에 산간 계곡에 발을 씻어 더위를 식히는 ‘탁족(濯足)’은 참으로 지혜로운 세시풍속이다. 탁족은 가까운 냇가나 계곡 폭포에 다녀오는 당일치기 피서 개념으로, 탁족이라는 단어는 “창랑의 맑은 물로는 갓끈을 씻고, 창랑의 흐린 물로는 발을 씻는다(滄浪之 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라는『맹자(孟子)』의 글귀에서 비롯됐다. 

선비들은 몸을 노 출하는 것을 꺼렸기에 발만 물에 담갔던 것인데, 발은 온도에 민감한 부분인데다 발바닥에 온몸의 신경이 집중되어 있으므로 발만 물에 담가도 온몸이 시원해지는 이치가 반영된 것이다. 정말 선비답고도 과학적인 피서법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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