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국에서 서울 할머니 집으로 살러온 아이
미국은 학교 입학이 9월이고 한국은 3월이다.
아이가 미국에서 10월에 왔니까 한국에서 초등학교에 다닐려면 5개월 지나 3월에 입학이 된다.
나는 우선 집에서 가장 가까운 어린이 집에 다니게 했다.
아이는 어린이 집에 다니는 것을 즐거워 했다. 행복해 했다.
아이는 한글을 몰랐다. 구청 작은 도서관에 가서 한시간씩 책을 따라 읽히고 집까지 빌려와서 동화책을 또 읽게 했다.
동화책 1권을 읽는데 1시간이나 걸렸다.
또래 친구는 그 시간에 3권이나 큰 소리 내어 읽고 자랑스러워 한다.
내나이 70이 넘어서 어린 6살 박이를 가르치고 쫓아 다니는 것이 힘에 벅찼다.
아이는 온순하고 착하다.
아이는 술래잡기를 좋아했다.
아빠가 오면 구석진 곳이나 장롱속으로 들어가 찾아주기를 기다렸다.
아이는 미국 시민권이 있다.
미국에서 낳아 돌이 되기 전에 서울에 와서 한국 이빠와 함께 살다가 아이가 만3살 되던 해,
아이 엄마가 하버드대학에 보낼거라는 큰 뜻을 가지고 서울을 떠나 LA로 갔다.
아이 엄마의 교육열이 대단하다.
어렸을 때 부터 유명한 유치원에 넣고 좋은 학교를 보내야 하버드대학에 들어 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이 엄마가 12살에 미국에 와서 보고 듣고 배운 것으로 아이를 잘 키워보겠다는 절실한 꿈이다.
아이는 미국에서 낳아 미국 시민권 소유자다.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에 UCLA( LA)에서 모집하는 컴퓨터 영재로 뽑혔다 한다.
그 유치원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해서 모두가 축제에 들떠 있다고 했다.
그런데 거기 보내는 학비가 비싸고 그 곳 까지 일주일에 한번씩 데리고 다녀야 하는 문제도 있었다.
아이는 실망스럽게 컴퓨터 영재교육을 받지 못했다.
돈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