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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삶/어린 시절

부산 피난시절의 초등학교 6학년 때 국가고사를 처음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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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피난시절의 사대부중 1학년 때
담임선생님과 함께
(필자 맨오른 쪽)

부산 보문동산 중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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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피난 시절 사재부중 2학년  때 필자
왼쪽에서 두 번째


 6.25 돌발 후 그 이듬해 1월 4일
1.4 후퇴 때 우리 가족은 피난 길에 올랐다

우리집은 공산당이 보면 반동 분자 집이었다
당시 큰 오빠는 철경(철도 경찰)이고
 둘째 오빠는 국군장병이고 큰 언니는 학교 선생이었다

6.25 때에 괴롭힘을 당하신 어머니는 피난 길을 서두루셨다
머리에는 두터운 털멍거지를 만들어 쓰고 두터운 솜두루마기를 입고 등에는 피난보짐을 무겁게 짊어졌다 막내까지 힘겨운 보따리를 등에 메어졌었다
사십 중반의 어머니는 대가족을 이끄시고 서울역에서 부산을 향하여 기차를 타셨다

어머니를 비롯 하여 새댁인 올캐와 세살, 돌도 안된 간난 아기
우리 삼자매 그리고 초등 학교 3학년인 남동생과 다섯살  막내동생.
 아홉 식구가 객차 지붕 위에 올라 앉아 무작정 부산을 향했다
다행히 우리가족은 철경 가족이라
기차를 탈 수 있었다

피난민으로 역안은 무척 소란 스러웠다
엄동설한에 강추와 눈발이 날리어 무척 추웠다
어머니는 두꺼운 솜이불을 꺼내시어 어린 조카들과 우리 형제들에게 덮어 주셨다
밤새 모진 바람에 이불이 객차 위에서 날아 갔다
우리는 흰 눈을 덮어 쓴채 바들바들 떨어야 했다

부산까지 1주일이 걸렸다 도중에 화차는 어디를 갔는지 자리를 비울 때가 많았다
우리는 집에서 만들어 온 주먹밥으로 요기를 했느데 밥이 꽁꽁 얼어 있어 배고파도 먹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 화차에서 나오는 더운 물을 얻어다 겨우 허기를 면했다
일주일 걸리어 부산역에 한밤 중에 도착했다
밤중에  여관도 못 구하여 갈 때 없는 우리를 위하여
 어머니는 피난 보짐을 가운데 모아 놓고 그 위에서 잠을 재우셨다
어른들은 전대를 허리에 차고 주무셨다
피난짐속에는 귀중품과 선생하는 큰언니의 혼수감이 들어 있었다
아침에 깨여나니  전대와 귀중품 보따리들이 없어졌다
누군가 곤히 잠들어 있는 식구들을 밀치고 가져갔다
다행히 막내 전대는 그대로 허리춤에 있었다

부산에서 무일푼이 된 우리는 고생을 만이 했다
다음에 계속
             
좋은 하루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