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노인복지센터 탑골미술관에서 자신이 직접 만든 ‘발원등’을 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는 어르신들.

소설 ‘봄봄’으로 유명한 소설가 김유정(1908~1937)의 외조카인 유필근(78) 화백은 둥그런 백등(白燈)에 강강수월래를 형상화한 아낙네들을 색종이로 오려붙였다. “이 나이에 발원이라면 가족건강 외에 뭐가 있겠노?”

서울노인복지센터 탑골미술관에서 실버도슨트를 맡고 있는 유 화백은 15년 전 대장암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왔다. 평생 그림 그리고 시 쓰며 살아온 그녀는 암선고를 받자마자 황망한 마음에 펜과 붓을 내려놓았다. ‘한번 죽지, 매일 죽기 싫다’는 이유로 항암치료를 거부했음에도 암은 거짓말처럼 없어졌다. 접었던 작품활동도 다시 시작했다.

암투병 중에 가족과 팬들로부터 받은 5000여장 ‘응원편지’에 붙어있는 우표를 떼어내 콜라주 형태로 화판에 붙인 ‘추억의 편린’이라는 작품은 세상을 놀라게 했다. “다시 태어났다는 생각으로 해마다 부처님오신날이 오면 직접 등을 만들어 밝힌다”는 유 화백은 “사찰에서 봉사활동의 일환으로 수십 개의 연꽃등을 만들다, 몇 해 전부터 ‘나만의 창작등’을 만드는 재미에 푹 빠졌다”고 했다.

“1년 중 부처님오신날 한번이라도 정성을 들여 등을 만들면서 세상의 평화와 행복을 발원한다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는 신분교(68)씨는 “등마다 사람들의 마음과 정성이 깃들어 있어 아름다운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속빈 강정과 뭐가 다르겠느냐”고 말했다.

그녀는 “100세 시대에 노인이라고 움추려 있지 말고 손발 열심히 움직이면서 등 하나라도 창작하면서 정성에너지를 내뿜는 게 중요하다”며 “안주하지 않고 창작하는 삶이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말했다.

서울노인영화제의 터줏대감으로 노인영화 제작에 몸담고 있는 최규종(81) 어르신도 이 날 10여분만에 등 하나를 뚝딱 만들어냈다. 그는 “아직 힘이 남아있을 때 어려운 사람 돕고 이끌어 줄 수 있도록 노력하는 불자가 되고 싶다”고 발원했다. 서울노인복지센터 탑골미술관에선 오는 30일까지 등전시회가 열린다.

[불교신문3100호/2015년4월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