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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추억의 편린

 추억의 편린

수필 유 필근

작품 「추억의 편린」을 바라보며 나는 옛 기억을 떠 올려 본다. 이 작품은 내가 받은 평생의 편지에서 우표를 따로 떼 내어 만든 콜라주 형태의 추상미술(abstract art)이다. 캔버스 80호에 각기 다른 우표가 약 3천여 장이 들어갔다. 우표 한 장 한 장의 사연이 깃드려 있어 나를 지난날로 되돌려 놓기도 한다. 처음 편지봉투 안에 있을 때에는 누가 어떤 내용의 말들을 살포시 속삭여 주었지만 이처럼 한 곳에 펼쳐놓으니 누가 누군지 알 수 없다.「추억의 편린」 속에는 내 친지,부모, 형제, 연인, 자녀들의 언어가 함축되어 녹아 있다. 그림속의 우표들이 「추억의 편린」의 합창을 부른다. 자세히 들어보면 음역을 알 듯도 한데 우표의 소인이 떼어 나가서 어렴프시 짐작을 해 볼 뿐이다. 우표마다 사연이 숨어 숨바꼭질을 하잔다.

「추억의 편린」을 제작하게 된 동기가 있다. 10여 년 전에 내가 많이

아팠다. 대장을 70센티미터나 잘라내고 항암치료를 6개월 동안 받은 적이 있다. 의사선생님이 2년간 항암약을 매일 먹어야 한다고 했다. 처음에 약을 받아 먹어보니 이것은 꼭 항암치료 주사를 맞을 때와 같은 증상이 일어났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나는 그 고통이 더 심했다. 냄새가 비위를 거슬려 토가 계속 되고 음식은 격한 냄새가 역겨워 먹을 수사 없었다. 김치 냄새 마늘 냄새가 더 지독히 나를 괴롭혔다. 하루 종일 냄새가 나를 어지럽혔다. 몸이 나른하고 기운이 없고 토를 계속해댔다. 항암약을 먹으면 고통이 따르고 머리카락도 빠진다. 지옥이 따로 없다.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나을지 모르겠다.

“약을 먹지 말자!”

약을 복용하는 동안은 살을 에는 고통이 따르니 약을 먹지 말고 버리자. 비싼 항암약을 모두 갖다 버렸다. 누구나 인간은 한번 죽는다. 매일 약을 먹으며 매일 죽는 고통을 겪을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한번 죽는 길을 택하기로 했다. 약을 먹지 않으니 냄새와 토가 약을 먹을 때보다 약해졌다. 좀 살 것 같았다.

한 달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고 약을 타 와야 하는데 이 후로는 병원도 가지 않았다. 비싼 약값도 들지 않아 일거양득이다.

죽음을 기다리는 동안 삶을 정리해야 했다. 편지, 옷가지, 살림살이…우선 받은 편지를 정리하기로 하고 편지들을 꺼내어 마지막으로 읽어보았다.

내 지난날 삶이 이안에 웅크리고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본다. 나는 모질게 편지봉투에서 우표만 떼 내고 편지들을 모두 불살라 버렸다. 편지에서 떼어낸 우표가 보통우표 4원짜리부터 2백오십원짜리, 특수 등기우표는 가장 비싼 것이 2천원짜리까지 있다. 우표의 종류는 다양하고 가지 수도 많다. 우표에는 테마가 있고 역사가 있다. 세월이 흐를수록 우표도 점점 비싸져갔다.

2000년 봄

80호 크기에 캔버스의 중앙에 「사슴가족」을 그리고 위쪽에 북 현무, 아래 남쪽에 주작, 동 청룡, 서 백호의 오방색으로 밑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우표로 약 5미리미터 짬으로 콜라주로 표현했다. 우표가 약 3천여장이 들어갔다. 우표와 밑바탕의 그림이 5밀리미터의 틈새로 묻어나와 옵티컬 아트가 되었다. 내가 보아도 멋지다.

제목을 「추억의 편린」이라고 명했다

.

이 작품을 2007년 KPAM(Korea Professional Artist Mall Festivalval) 대한민국 미술제에 출품 했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부스 전에서 전시가 열렸는데 우표로 골라주 한 작품 12점도 함께 전시했다.

관람객들은 작품을 보고 붓으로 일일이 그린 것 인줄 알다가 자세히 보고 우표 콜라주라는 것을 알고는 재미있어 했다. 그리고 우표 값이 많이 들어갔을 거라고도 했다. 나는 우취인이 아니기 때문에 우표의 값어치를 모른다. 내게는 다만 작품이다. 순수 회화다.

관심 있는 관람자는 작품 앞에 가까이 가서 자기가 소장한 우표를 찾아보고 비교해 보며 반긴다.

또 미술평론가 최씨는

“대한민국에서 처음 보는 작품.

세계에서 이런 작품을 하는 사람은 처음이라고” 하며 미술 표현의 다양함을 학교에 가서 대학생들에게 보여준다고 사진을 찍어 갔다.

관람객의 화두는 이렇게 많은 우표를 어떻게 모았느냐고 질문을 한다. 나는 평생 모은 우표라고 말해준다. 그리고 우표가 부족하여 「나만의 우표」를 만들어 작품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표를 사 모은 경험이 있다.

최근에는 우표가 귀해졌다. 기념우표 는 발행하는데 편지는 보통 스탬프로 소인을 찍어 준다.

한가람 미술관에서 전시 후 친지들이 사용했던 우표를 내게 보내 주었다.

어떤 이는 4장, 손형 같은 동문은 우표수집가인데 그간에 모은 우표를 많이 보내 주어 다음 전시 작품 준비 하는데 도움을 주어 고맙다. 또 인연이 닿아 필요 없는 우표를 보내 준이도 있다. 색다른 우표를 많이 모을 수 있는 곳은 등기소인데 주인을 찾지 못해 되돌아오는 편지에서 비싼 등기우표를 얻을 수 있었다.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곳은 인터넷이다. 또 사용한 우표를 모아 수출하는 곳도 있었는데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내게 온 우표가 있다. 군대 위문편지의 우표가 있다. 1987년도의 우표 값은 80원이었는데 위문편지의 우표 중에 10원짜리 우표를 하트 모양으로 곱게 접어 보내 준 마음씨 고운 그녀를 떠올려 보고 웃음지어 본다.

우표 마다 사연이 있다.

고운 사연인가 하면 절망의 소식도 있었으리라…

이 「추억의 편린」 덕분에 현대미술의 세미앱스트랙(Semiabstract)형식과 팝아트를 넘나들며 작품을 하여 전시를 한다. 끝

유필근(兪弼根) 1938년생

학력;강릉사범학교.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미술전공

수필집『은행나무 집』1984

『합창하는 세상』공저

『침묵속에 대화』공저 『사랑과 용서』공저

『길따라 정따라』공저

수상 허난설헌문학대상

계좌번호

우리은행 109-036552-12-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