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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감상

페테르 파울 루벤스 (Peter Paul Rubens) 페테르 파울 루벤스 (Peter Paul Rubens) 1577-1640 삼손괴 데릴다 루벤스의 28세 때의 작품 이작품으로 일약 유명하게 되었다. 삼손의 머리카락이 잘리고 있다. 삼손의 힘의 비밀을 알아낸 데릴라는 100냥을 받고 삼손을 팔아넘긴다. 루벤스는 사랑과 배신을 주제로 빛과 어둠을 표현했다. 날마다 좋은 날
Herbert Jamess Draper1863-1920 Herbert Jamess Draper1863-1920 Day and Dawnstar 날치 이카루스를 위항한 비탄 아프로디테의 진주
Carl Lasson 의 그림들 Carl Lasson 의 그림들 스웨던의 국민화가 (1853-1919) 시골의 한적한 곳에 낡은 집을 개조하여 가족 부인 아이들고 살아가는 것을 그렸다.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 - [1758(영조 34)∼?] 자는 입부(笠夫), 호는 혜원(蕙園), 본관은 고령(高靈). 혜원 신윤복은 김홍도와 쌍벽을 이루는 조선후기 풍속화가로서 부친 한평(漢枰)과 같이 회화를 관장하는 국가기관인 도화서 (圖畵署)의 화원(畵員)으로 첨절제사(僉節制使)의 벼슬을 하다 속화(俗畵)를 즐겨 그려 도화서(圖畵署)에서 쫓겨난 것으로 전해지는 것 이외는 생애가 거의 알려져 있지 않고 있다. 단오풍정 무녀신무 상춘야홍 쌍검대무 영소답청 전모를 쓴 여인 천금상연 후기딥풍
호생관(毫生館)최북(崔北)의 작품감상 최북은 괴팍한 화가 호는 호생관(毫生館) 최북은 괴팍한 화가 최북 영조 때 화가 최북(崔北)은 괴팍한 성격과 행동으로 기인 소리를 들었으며 천재화가로 유명했다. 최북은 특히 남의 비위를 맞추기 싫어했으며 권세의 오만함을 환멸하는 불같은 성격이었다. 술을 매우 좋아하였으며 행동거지가 거칠기 짝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이름인 북(北) 자를 둘로 나눠 스스로 칠칠(七七)이라 부르기도 했는데 솔직하고 대담한 기법으로 산수화, 인물화에 능했으며 붓에 인생을 걸었다는 의미에서 호생관(毫生館)이란 호를 지어 사용했다. 그는 나이 49세에 엄동설한에 동대문안 길에서 눈속에 선채로 얼어죽었다고 한다.
고흐의 자화상 고흐의자화상(1853-1890) 빈센트 반 고흐는 네델란드 화가다. 여러가지의 직업을 갖다가 27세때부터 그림을 한다. 37세로 죽을 때 까지10년동안 혼신의 힘을 다하여 천재 화가는 800여점의 그림을 그렸다. 그는 파리 생활 2년간 200 여점의 작품을 하는 정열가 모델을 구할 수 없어 자신의 자화상을 그렸다한다 그의 자화상은 35점 정도로 많다. 1888년 겨울 어느날 레셀에게 종이에 싼 것을 던지고 간다. 고흐는 왼쪽귀를 면도칼로 자른 것아다. 실제로는 왼쪽 귀를 짜른 것인데 그림은 반대로 거울의 비춘 모습이다. 고흐는 이사건 보름만에 두점의 자화상을 그리고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그후 요양원에서 일년을 보낸다. 그에게 따라 다니는 간질, 황시증 알콜중등 환청으로 그를 괴롭혔다 날마다 좋은 날
악마 파가니니의 초상 Jean-Auguste-Dominiqu Ingres, Jean-Auguste-Dominique] Ingres, 1780~1867) 앵그르가 그린 파가니니의 초상 앵그르는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의 초상을 그려 주었다. 부드럽고 섬세한 모습의 초상화를 본 파가니니는 매우 만족했다한다. 바이올린 연주를 신의 경지까지 이른 듯 파가니에게 부쳐진 이름이 파가니니는 사랑하는 아들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치지 않았다한다. 바이올린을 배울때 고생스러운 경험을 그가 겪었기 때문이다. 파가니니가 죽었을때 고향 교회에서 악마의 파가니니라고 받아주지 않아 교회 무덤을 쓰지 못하였는데 사후 50년후에 아들의 노력으로 고향 교회 부지로 옮겼다고 사랑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삶이 가슴에 와 닿는다.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터키 목욕탕》 -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Jean-Auguste-Dominique(1780~1867) 앵그르가 말년에 그린 은 원형 안에 그림이 있다. 동그라미는 열쇠 구멍으로 여탕을 흠쳐보는 관음증의 효과가 있다. 오른쪽 여인은 앵그르의 두번째 부인 델핀을 모델로하고 뒤에 두 여인이 가슴을 만지는 장면은 동성애를 암시한다. 예나 지금이나 사우나탕은 목욕이 목적이 아니라 피로를 풀기 위해서 건강을 위해서 또는 즐기는 곳이다. 처음에는 네모 컴퍼스에 그렸는데 원형의 그림이 여탕을 몰래 들여다 보는 효과가 더 있다. 앵그르는 바이올린도 수준급으로 교회에서 바이올린 연주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