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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삶/어린 시절

아름다운삶 복주머니꽃(개불란)) 노랑개불란 개불란 개불알꽃 어린 시절 검당산에 나물개러 갔다가 꺾어다준 꽃 개불알꽃 지금은 복주머니꽃 개불란 지금은 꽃시장에 가면 만나다 좋은 하루 되셔요
부산 피난시절 나는 부산진초등학교 1회 졸업생이다 부산에서 사대부중 2학년 맨 뒷줄 가운데 필자 부산에서 사대부중 2학년 생활고에 허덕이고 부산 피난시절 어머니의 고심은 끝이 없었다 매일 9식구가 먹어야 하는 데 돈이 없고 양식도 없었다 처음엔 가지고 간 옷가지를 팔아 쌀을 사 밥을 해먹고 돈이 부족 할 때는 보리쌀을 사 보리 밥을 해 먹었다 점점 팔 것이 없어지니 죽을 쑤어 먹었는데 어른이나 어린애들도 똑 같이 한대접씩 죽을 먹었다 범일동 농가 근처에 6.25 전쟁 포로 숙소가 있었는데 포로들이 가끔 똥통을 메고 줄을 서 지나간다 근처 빈 밭에 구덩이를 파고 그 것을 쏟아 부으러 가는 것이다 그 때 초체한 모습의 포로들이 비누를 들고 나오면 잽싸게 떡과 바꾸는 것이 사업?이 었는데 우리 식구들은 아무도 그 것을 할 줄 몰랐다 보다 못 한 어머나가 나 ..
부산 피난시절 부산진초등학교를 졸업하다 사대부중1학년 사대부중2학년때 부산에서 부산 피난시절 어머니는 범일동 농가에 방을 하나 얻으셨다 안채 뒷쪽 작은 방인데 작은 다락이 있고 방문을 열면 오양간이 있었다 아홉 식구만 앉아도 방이 좁게 느껴지는 작은 방이다 오양간에는 누런 중송아지가 매여 있었다 방안까지도 송아지 우는 소리가 들리고 두엄 냄새가 났다 어머니는 둘째오빠가 혹시라도 부상해서 후송 되여 병원에 입원 해 있나 하고 병원마다 찾아 다니셨다 그러나 부상병 중에 오빠는 없었다 어머니는 부산진 초등학교에 나를 데리고 가셨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해에 6.25 전쟁이 터졌고 전쟁 직후 학교에서는 제대로 수업을 못하였다 그 때 교장 선생님이 졸업이 두달 밖에 안 남았는데 곤란하다고 말씀 하신 기억이 난다 "중학교에 갈려면 초등학교 졸업장..
부산 피난시절의 초등학교 6학년 때 국가고사를 처음보았다 부산 피난시절의 사대부중 1학년 때 담임선생님과 함께 (필자 맨오른 쪽) 부산 보문동산 중턱에서 부산피난 시절 사재부중 2학년 때 필자 왼쪽에서 두 번째 6.25 돌발 후 그 이듬해 1월 4일 1.4 후퇴 때 우리 가족은 피난 길에 올랐다 우리집은 공산당이 보면 반동 분자 집이었다 당시 큰 오빠는 철경(철도 경찰)이고 둘째 오빠는 국군장병이고 큰 언니는 학교 선생이었다 6.25 때에 괴롭힘을 당하신 어머니는 피난 길을 서두루셨다 머리에는 두터운 털멍거지를 만들어 쓰고 두터운 솜두루마기를 입고 등에는 피난보짐을 무겁게 짊어졌다 막내까지 힘겨운 보따리를 등에 메어졌었다 사십 중반의 어머니는 대가족을 이끄시고 서울역에서 부산을 향하여 기차를 타셨다 어머니를 비롯 하여 새댁인 올캐와 세살, 돌도 안된 간난 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