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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것들/유명인

천국 에서 온 편지 순천향대 서교일 총장" ★천국 에서 온 편지 ◈순천향대 서교일 총장" 순천향대 서교일 총장 "가진 것 다 주고 떠납니다" 24일 이임하는 순천향대 서 총장 대학 국제화·가족형 리더십 실천 귀감… 사재 650억 기부… 여생 '봉사속으로' 42세의 나이로 종합대학 총장에 취임해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순천향대 서교일(51)총장. 그가 오는 24일 8년간 지켜온 자리를 떠난다. 서총장은 물러나는 것에 그치지않고 개인 자산인 의료법인 동은의료재단소속 순천향대학교 천안병원, 순천향대학교 구미병원 등을 대학에 기부했다. 기부액이 감정평가액만 650억원에 이르고 각 병원의 의료인프라를 포함한 인지도 및 브랜드 가치 등을 포함하면 2,500억원 규모다. 명예와 재산을 학교에 털어 부은 이유는 더 많은 환자를 돌보고 봉사하기 위함이다. 그는 "..
이승만대통령의 인민군 포로석방 일화 인민군 포로석방 일화 1953년 6월 13일, 그는 미국이 한국정부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휴전을 하고, 포로석방에 대해서도 북한 측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하자, 미군이 억류하고 있던 인민군포로 중 북으로 가기를 원치 않는 반공포로 2만7천명을 탈출시켰다. 미군이 지키고 있던 포로수용소를 한국군이 기습하여 포로를 석방시킨 것이다. 이에 미국이 화를 단단히 냈다. 미 국무장관 딘 러스크가 이승만에게 달려왔다. 이승만은 참새 몇 마리를 잡아다 새장에 넣고 나무에 매달아 놓았다. 성질 급한 새들이 나가려고 발광을 했다. 이 새들의 몸부림을 본 러스크 장관이 '새들을 풀어주지 왜 가두어 두느냐'고 했다. 이승만이 그러면 풀어주겠다고 순순히 대답했다. 이에 러스크가 '기르는 새일 텐데 아주 도망가면 어떻게..
비운의 덕혜옹주 덕혜옹주(德惠翁主, 1912년 5월 25일 - 1989년 4월 21일) 덕혜옹주 귀국 구한말 황족으로 광무제 고종이 60세가 되던 해에 후궁 복녕당 양씨 사이에서 얻은 고명딸이다 생애 고종황제의 고명딸인 덕혜옹주는 5살때 즉조당에 유치원이 만들어질 정도로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을 받으면서 자랐다. 1917년 민중들의 존경을 받는 대한제국 황실의 영향력을 두려워한 일본 제국에 의해 덕혜옹주는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의 명으로 일본황실 황녀로 정식 입적되었다. 서울의 히노데(日出) 소학교를 거쳐 일본에 강제유학을 간 그녀는 1925년 도쿄 가쿠슈인 대학(学習院大学)에 입학하였지만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여 신경쇠약에 걸렸다. 1930년 모친 복녕당 양씨의 죽음을 계기로 정신분열증(조발성 치매증) 증세를 보였으나..
서산대사 해탈시 -인생- 西山大師 解脫(해탈) 詩-人生 휴정(休靜) [(1520~1604, 자(字) 현응(玄應), 호(號) 청허(淸虛))]은 조선중기의 승려로 서산(西山)이라는 법호(法號)로 더욱 유명하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73세의 노령으로 승병 1,150명을 규합하여 나라를 구하는데 공을 새웠으며 선종에 교종을 포섭·융화시켰다 출세 하기 싫은 사람 누군고. 시기 질투 없는 사람 누군고. 흉허물 없는 사람 어디 있겠소. 가난하다 서러워 말고, 장애를 가졌다 기죽지 말고 못배웠다 주눅 들지 마소 세상살이 다 거기서 거기외다. 가진 것 많다 유세 떨지 말고, 건강하다 큰소리 치지말고 명예 얻었다 목에 힘주지 마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더이다 잠시 잠깐 다니러 온 이 세상, 있고 없음을 편 가르지 말고, 잘나고 못남을..
박 대통령과 정 주영 회장이 이룬 기적 박 대통령과 정 주영 회장이 이룬 기적 1975년 여름 어느 날, 박 정희 대통령이 현대건설의 정 주영 회장을 청와대로 급히 불렀다. “달러를 벌어들일 좋은 기회가 왔는데 일을 못하겠다는 작자들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 중동에 다녀오십시오. 만약 정 사장도 안 된다고 하면 나도 포기(抛棄)하지요.“ 정 회장이 물었다. “무슨 얘기입니까?” “ 1973년도 석유파동으로 지금 중동국가들은 달러를 주체하지 못 하는데 그 돈으로 여러 가지 사회 인프라를 건설하고 싶은데, 너무 더운 나라라 선뜻 일하러 가는 나라가 없는 모양입니다. 우리나라에 일할 의사를 타진해 왔습니다. 관리들을 보냈더니, 2주 만에 돌아와서 하는 얘기가 너무 더워서 낮에는 일을 할 수 없고, 건설공사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이 없어 공사를 할 수..
김 추기경의 참말과 거짓말 김 추기경의 참말과 거짓말 김수환 추기경을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는 외국인들이 제법 있다. 그들과 편안하게 이야기를 하고 계신 모습은 참으로 보기 좋다. 어느 날 궁금증이 일어, 추기경님께서 몇 개 국어를 하시는지 주교관 식당에서 여쭈어 본 적이 있다. 추기경님께서 '당신은 두개의 언어를 잘하는데, 그 말이 무엇인지 맞추어 보라' 고 하셨다. 같이 식사를 하고 있던 국장 신부들이 저마다 추론하여 대답을 했다. 어느 신부님은 '추기경님께서 독일에서 유학을 하셨으니 독일어를 잘하실 것이고, 일제 강점기를 사셨으니 일본어를 잘하실 것 같다.' 고 말씀을 드렸다. 그랬더니 추기경님께서는 '아니다.' 라고 대답하셨다. 다른 신부님이 '추기경님이 영어로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자주 뵈었으니 영어와 독일어가 아니겠느냐'..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 선종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 선종 김수환 추기경님이 16일 오후 6시12분께 강남 성모병원에서 선종하셨다. "추기경께서는 평소 늘 하시던 말씀대로 임종을 지켜본 교구청 관계자들과 의료진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남기고 가셨다" 사랑의 주님!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의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아멘.
김수환 추기경님 편히 잠드소서 김수환 추기경님 편히 잠드소서 김수환 추기경님 약력 ▲1922년 5월8일(음력) = 대구 출생 ▲1941년 = 서울 동성상업학교 졸업 후 일본 동경 상지대 입학 ▲1942년 = 상지대 문학부 철학과 진학 ▲1944년 = 2차 대전으로 학업 중단 ▲1947-51년 = 서울 가톨릭대 신학부 신학전공 ▲1951년 = 사제서품 및 대구 대교구 안동 천주교회 주임신부 ▲1953년 = 대구 대주교 비서 신부 ▲1955-56년 = 대구 대교구 김천시 황금동 천주교회 주임신부 ▲1956-63년 = 독일 뮌스터대 대학원 사회학전공 ▲1964년 = 주간 가톨릭 시보(현 가톨릭신문) 사장 ▲1966년 = 마산교구 주교 서품 및 마산 교구장 착좌 ▲1967년 이후 = 교황청 세계 주교 시노드 (대의원회의)에 한국대표로 6차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