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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삶/어린 시절

일본 농촌 부인들의 홈스테이 일본 농촌 부인들의 홈스테이 부안동 집에 살 때에 일본 농촌 부인들 세명이 우리집에서 홈스테이를 했다.주인이 이곳 저곳 서울 명소를 안내를 했다.그 후 부인들이 답예로 일본으로 주인을 초대했다.주인은 어렸을 때 오사카에서 살았기 때문에 일어를 잘했다.또 거래처도 일본에 있고 나도 화가로 활동을 하여 해외로 자주 다니고 있을 때이다. 왼쪽으로 세명이 일본 부인이고 가운데 키 큰 검은 웃옷을 입은 사람이 남편이고 그외 오른쪽분들은 공무원. 사진속에 보니 남편이 더 멋져보인다.
노무현씨를 만나다. 고대노동대학원에서 노무현을 만나다 필자(유필근)과노무현 수필가 이학선으로 부터 고대 노동대학원에 들어오라는 부탁을 받았다. 저는 노동에 대하서 문외한인데 노동대학원에 가서 무얼 해요 하고 물었다.그는 노동대학 청사가 없어서 돈을 조성해야 하는데 화가가 필요하다고 했다.화가들이 작품을 전시 해서 그 수익금으로 청사를 짓는데 한몫을 할 수 있다고 했다. 평소 내작품을 좋아하던 학선씨라 전시를 해서 작품판매를 해서 청사를 짓는데 당신도 협조하라고 했다..그리고 유명한 화가 누구누구도 함께 입학을 했고 전시를 할거라했다. 그래서 나는 고대노동대학원5기로 입학을했다. 그러나 전시도 하지 않고 기금도 모으지 않았다.어느날 조찬포롬에서 노무현씨를 만났다. 노무현씨는 7기수료자이다.내가 종로구 부암동에 살고 있을 때이..
나의 작업 나의 작업 파리 메타노니아 갤러리 전시장에서 관람객이 싸인을 한 등에 석류를 그릴 준비를 하고 있다.
아들 딸과손자 아들 .딸.과 손자
새창작 장르 '캘리스탬프' 새창작 장르 '캘리스탬프' 칼럼이스트 여해룡 이른바 제 4차 산업혁명을 맞이 하면서 예술분야의 창작 개념도 스스로 다듬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되였다. 이전까지의 아알로그 개념이 침잠된 상태에서 자취를 감추고 마는가 싶었던 것이 정서 생활에서 멋졌던 우표 수집이 아닌가 싶다. 우표 수집이 우취郵趣(philately)로 자리 잡았던 것도 한 시대에 불과했으니 더 말할 나위가 없겠다. 그나마 우리 시대의 존경 받았던 이어령 선생이 만들어 냈던 '디지로그'라는 새 낱말이 시사 용어에 지리매김된 것만은 다행스럽다고 생각한다. 물론 우취는 아날로그 범주에 속한다. 이를테면 창작 장르가 문학.음악. 미술. 연극에서부터 1960년대에 사진과 홀로그램(비디오 아트)에서 애니메이션까지 자리를 잡게 되자 우취도 함께 어..
재능 기부 재능 기부 한벗 남창우 회장으로부터 재능 기부를 하자는 전화가 왔다. 참빛교회에서 7월 22일 6.25참전 용사와 해병대제대군인 100여명을 초대해서 식사를 대접 하고 합죽선을 선물하는데 글씨는 남화장이 쓰고 그림은 나보고 그려달라고 부탁해 왔다. 남 회장은 붓글씨로 ‘마음의 부자 집’이라는 글을 10여 년간 15만장이나 써서 재능 기부를 한 분이다. 그분 말을 빌리자면 ‘무료로주고, 덤으로 주고, 공짜로 주고, 서비스로, 덤으로 하나 더 준다.’라고 국내외 많은 사람들이 남 회장의 “마음의 부자 집” 글을 가지고 있다. 나도 남 회장을 따라 재능 기부를 하기로 하고 내화실로 합죽선 120개를 배달해왔다. 7월 17일 18일 양일간 하루 종일 남 회장은 ‘나는 세계 평화 사자다’라고 쓰고 나는 무궁화를 ..
추억의 편린 직조공장을 하다 57-1 직조공장을 하다 1953년 둘째 오빠가 휴가차 집에 와서 많은 일을 하고 갔다. 밥 먹는 식구 줄이기. 우선 머슴들 내보내기추수 할 때까지 양식 장만하기 겨울철에 땔 땔나무 장만하기 장작은 뒷마루 처마 밑에 잔뜩 쌓아 놓았다. 그리고 오빠는 군에 되돌아갔다. 어머니가 할머니의 수의를 짜신 후 직조 기술이 점점 발달 해 갔다. 베틀에 앉아 발로 날실을 벌리면서 천을 짜지 않고 자동으로 베틀의 바디가 벌려지고 실을 넣는 꾸러미가 왔다갔다 하였다. 어머니와 언니는 직조공장을 광에 차리셨다. 기계 3대를 들여 놓고 기술자 한사람이 혼자서 3대를 돌보았다. 공장에서 천을 약 한필정도 짤까말까 했을 때 ,6.25가 일어났다. 기술자는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추억의 편린 57-2 625 사변 6.25 사변 (57-2) 6.25 난리가 났다. 국군이 한강 백사장에서 많이 죽어 있다는 소문이 퍼졌다. 어머니는 군인이 작은 오빠를 걱정하였다. 또 서울에 사는 큰 오빠가족을 걱정하여 그날로 걸어서 서울을 가셨다. 큰 오빠는 철도 경찰로 들어갔고 셋째아기가 태어 난지 백일도 안 된 올캐가 아이 셋을 데리고 허둥대고 있었다고 한다. 시어머니는 작은 아기를 업고 올캐는 둘째 아이, 외할머니는 큰아이를 업고 산곡으로 내려왔다. 대청마루에 아가 그네를 매고 조카아기들이 울면 흔들어 주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 었다. 조카가 셋. 큰 애 이름은 미래인데 병이 들어 걷지를 못하고 기어 다니었다. 그 다음 둘째 사내아이는 영리하여 아장아장 걸어 다니면서 대추나무 밑에서 대추도 주워 먹고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언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