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름다운 삶/어린 시절

추억의 편린 동치미 담그는 날 36-1 동치미 담그는 날섬봉이가 동치미 무를 삼태기에 담아 지게로 나른다. 우리 집은 특히 동치미를 많이 담갔다. 열 접은 담가야 겨울을 난다고 한다. 커다란 나무통에 10cm 전후한 동치미 무를 넣고 물로 씻는다 .잎을 따낸 무를 나무통에 넣고 거물개 끝에 새끼줄을 칭칭 감아 무에서 흙을 털어 낸다. 장정 둘리 무를 씻는 광경이다. 몇 번을 설렁설렁 거물개가 왔다 갔다 하면 한 통 안의 무가 하얗게 흙이 씻겨나갔다. 그렇게 하고 깨끗한 물로 두 서너 번 씻어 발에 담아 물기를 뺀다. 어머니는 유모와 함께 동치미광에 가서 동치미를 담갔다. 어머니의 동치미 맛이 시원하고 맛있다고 소문이 나서 겨울이면 서울에서 이모부까지 내려 오셨다.이동치미는 겨울철 사랑방에서 가마니를 짜는 일군들의 간식거리도 되었다.3..
추억의 편린 가마니 짜기 39-1겨울철 농한기에 가마니 짜기 우리 집 사랑방은 동네에서 제일 넓었다.농사철이 끝난 겨울이 되면 가마니를 짜고 새끼줄을 꼬았다. 쌀농사를 많 짓는 우리 집은 가마니가 수 백장 필요했다. 가마니는 많이 필요했다. 농사를 지을 벼를 담고 쌀을 담아야하고 또 겨를 담아 논밭에 거름으로 뿌리는데도 필요했다. 그 외에 가마니는 많이 필요했다. 가마니틀 두 대를 놓고 장정들이 밤낮으로 가마니를 짜댔다. 가마니 하나를 짜는 데는 가는 새끼줄 100발이 필요하고 짚 풀이 많이 필요했다. 가마니틀에 새끼줄을 차례대로 차곡차곡 바디에 연결하여 맨다. 가마니를 짤 때는 바디와 대나무 갈키가 있어야 한다. 짚 풀의 잔털을 털어내고 속대를 간추려 놓는다. 가마니를 짤 때에는 세 사람이 필요하다. 바디를 운전 할 사람과 대..
추억의 편린54 1953 5월 어느날 54 1953년 5월 어느날 군에 입대한 둘 째 오빠가 휴가를 왔다.거문다리 집으로 이사를 한 것을 보고 오빠는 이것저것 집안 살림을 챙겼다. 곡광의 양식을 챙기고 겨울까지 땔나무를, 뒤 곁에 장작도 쌓아 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큰 오빠가 살림을 했는데 큰 오빠가 많은 식구를 위하여 새로운 것을 시작했다. 과수원의 배나무를 베고 일년감과 개구리참외를 심고 새로운 농작물을 가꾸어보려 했는데 한국에서는 토마토의 좋은 점을 아직은 몰랐다. 큰오빠는 부인과 아기를 데리고 서울로 이사를 했다.새로운 사업을 시작 하려면 자본이 필요해서 땅을 팔고 집을 팔고 겨우 먹고 살만큼만 남겨 놨다. 작은 오빠는 우선 밥 먹는 식구를 줄이자고 했다. 섬봉이와 박 서방을 내보자고 했다. 박 서방은 도지를 받아 본가로 돌아가..
자서전 몸이 천냥이면 눈이 구백냥 2017년 1월7일몸이 천 냥이면 눈은 만 냥2016년 겨울 건강 검진을 받았다. 혈압은 높은 편이나 다른 곳은 정상이라 했다. 그러나 시력이 많이 떨어졌으니 안과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라 했다.왼쪽 눈이 1.0, 오른쪽이 0.3.시력이 급격히 떨어지면 시력을 잃을 수도 있으니 안과에 가 보라했다. 나는 백내장기가 있어서 약 2개월마다 안과에 가서 진찰을 받고 백내장 약과 눈물 약 처방받아 사용하고 있다. 안과에 가서 검진 건강 얘기를 하고 시력이 많이 떨어졌다하니 안과 선생님은 다른 때보다 자세히 검사를 하시더니 아무래도 큰 병원에 가는 것이 좋겠다고 하며 추천서를 써주었다.“선생님 백내장! 녹내장!”하고 물었더니“시력이 갑자기 떨어지면 황반변성형이 의심되는데 ....큰 병원에 가보라”했다. 나는 고민이..
추억의 편린56다락방에서 세계명작을 읽다 56.다락방에서 세계명작을 읽다. 검은 다리 집은 전에 살던 동수맥 집 보다 좋았다.안채에 안방과 안방에 딸린 넓은 다락방, 안방에 옆에 작은 방, 잘 길들여진 배나무 쪽 마루, 넓은 마루 위 대들보 근처에 덩그라니 올려 있는 병풍들과 난간이 딸린 건너 방. 나는 안방에 딸린 다락방을 좋아했다. 다락방에 올라가 혼자서 책 읽기를 잘 했다. 큰 오빠가 사다놓은 세계명작집을 국민학교 5학년 때 다 읽었다. 다락방 창문으로 건너편 개울과 개울로 다니는 사람들을 내다보곤 했다. 텃밭 주위로 대추나무를 여러 그루 심어서 우리 땅과 길을 구별하게 나무를 심었다. 대추나무가 개울과 뒤 텃밭의 경계가 되는 셈이었다. 대추나무 뒤로 개울로 연결되어 길이 나있는데 동네 여자들은 대개 빨래를 하러가고 남자들은 논밭으로 일하..
추억의편린 57 내 놀이터 57 내놀이터 우리 집 텃밭 뒤로 밤나무들이 있는데 밤나무사이에 작은 원두막을 짓고 언니들과 동네 친구들이 모여 수를 놓으며 놀았다. 또 심심하면 실뜨기도 하고 공기놀이도 하고 곤충 채집도 하였다. 놀다가 싫증이 나면 텃밭에 가서 오이도 따먹고 딸기. 복숭아도 따먹고... 밀집이나 보리 집으로 매미 집을 만들어 매미나 여치를 잡아 가두기도 했다. 매미는 매미 집에 가두면 울지를 아니했다.여름에 매미도 잡아보기도 하고 잠자리를 잡아 시집을 보내기도 하며 재밌게 지냈다. 놀다가 오줌이 마려우면 원두막에서 내려와 아무데나 치마를 걷어 올리고 볼일을 보았다. 어머니가 여자애들이 풀숲에서 볼일을 보는 것을 보시고 대추나무 사이에 작은 헛간변소를 지어 주셨다. 벽을 돌로 쌓고 흙으로 마감을 하고 지붕은 짚으로 덮었..
추억의 편린 50 산곡 초등학교 50 산곡 초등학교 1945년 해방이 되자 산곡간이학교가 정식으로 산곡국민학교로 인가가 났다.우리들 1학년이 다음해 산곡국민학교 2학년이 되었다.이제는 신장에 있는 동부국민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었다. 동부국민학교는 이곡에서 약 4km 이상 떨어져서 어린 학생들이 걸어서 학교에 다니기는 좀 무리였었다.새 학교 부지는 간이학교에서 약 1km 이상 떨어진 검당산 밑에 자리를 잡았다. 공동묘지 터였라고도 하였다.새학교로는 3학년이 되어서 이사를 갔다. 학교 운동장은 돌조각이 만아 넘어지면 무릎을 다치었다.겨울엔 어린학생들이 산에 가서 나뭇가지를 한 가지 씩 끌고 와 난로에 불을 지폈다.결국에는 학부형들이 나무를 한 짐씩 해다 주었다. 학부모님들 덕분네 교실에 난로를 따뜻하게 피울 수 있었다.내가 4학년이 되었을..
추억의 편린51어머니 헌 저고리로 셔츠를 만들다. 51 어머니 헌 저고리로 셔츠를 만들다. 새 천을 사다가 처음 진솔로 저고리를 만들 때에는 저고리 치수를 재단을 하여 옷을 꿰맨다.그러나 헌 저고리를 빨아서 두 번째로 저고리를 꿰맬 때에는 일일이 먼저 꿰맨 솔기를 뜯어 깨끗이 빨아서 풀을 먹이고 꾸덕꾸덕 마르면 발 다듬이를 하고 마지막으로 다듬밋돌에 올려 천이 맨들맨들 할 때까지 다듬질을 한다. 내가 3학년이 던 여름에 어머니가 저고리를 꿰매 실려고 다듬이를 입히신 저고리 감으로 웃옷 셔츠를 내손으로 만들어 입었다. 이 때에는 여자애들은 치마저고리를 입고 남자애들은 바지저고리와 조끼를 입을 때였다. 내가 웃옷 셔츠를 만들어 입고 어두니골 진외당숙 집에 놀러갔었다. 당숙모가 나를 보더니 “너의 엄마는 서울 사람이라 솜씨가 좋아서 신식 우아기를 만들어 입히..